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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Dec 12. 2018

왜 약국에선 아침을 먹는지 물어보지 않죠?

몸살감기 후 남겨진 아침약 20봉지






올 초겨울, 생애 최고로 지독한 감기에 걸렸었다. 금요일 오후 업무 시간에 목이 칼칼하다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다음날 토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온몸이 으슬거렸다. 중요한 결혼식엘 가야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였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집에 아무도 없어 서러운 몸을 질질 끌고 병원엘 다녀왔고 세상이 가라앉는 것 같은 몸살에도 죽을 먹겠다고 본죽집을 갔다. 한 열테이블 정도 꽉찬 매장 사이에서 간절하게 빈테이블을 찾았고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유리창이 있는 테이블 한 켠에 엎드려 몸살을 견뎠다. 삼일 정도는 꼼짝 않고 집에서 요양 생활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기운을 차렸다.




몇일 전, 책상 정리를 하다 그때 먹다 남은 약봉지들을 발견했다. 감기는 3주 정도 지속됐는데 그 시간 동안 남은 것들이었다. 하나씩 버리려고 주섬주섬 줍다보니 죄다 아침이라고 적혀있었다. 아침에 먹어야 할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아침을 안 먹기 시작했다. 하루 세끼, 매일 아침까지 꼭꼭 챙겨먹어야 하는 가정 안에서 생활해왔건만, 아직까지 아침에 뭐 하나라도 먹이고 내보내고 싶어하시는 엄마 마음을 뒤로 하고 빈속에 출근을 한지가 몇년째다.


나처럼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나뿐일까? 우리 회사에도,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도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왜 약은 꼭 아침 점심 저녁을 나눠 지어주는 걸까? 왜 약국에서는 아침을 드시나요?라고 물어보지 않는 것일까? 약은 꼭 식후에 먹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아침을 먹지 않고도, 아니 꼭 밥을 먹지 않고도 먹어도 되는 약이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남겨지는 쓰레기들이 없을텐데. 남은 20봉지의 약들, 이제 안녕. 내년엔 꼭 좀 보지 말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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