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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Aug 18. 2024

비만 오면 무릎이 시큰거려

엄마 어렸을 적엔 -9-

 "아고... 무릎이야. 오늘 비가 오려나?"

 옛날 할머니들이 비만 오면 그렇게 여기저기 쑤신다고 하시더니 40이 넘고 나니 나도 딱 그렇다. 이상하게 무릎이 유난히 시큰 거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것이다. 몇 달 전 뒤차가 정차하고 있는 내 차를 박아서 한의원을 좀 다녔었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께 혹시 예전에 다친 곳이 이제 와서 아플 수도 있냐고 물었더니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과학과 의학으로 다 설명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비만 오면 유난히 쑤시는 내 무릎은 분명 어릴 때 다쳤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어릴 적 뛰어놀던 주 무대는 부대 앞 공터였지만 골목 안 쪽에 사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윗동네 아이들과 함께 노는 대규모 집단이 될 때면 우리는 박쥐를 발견했던 그 대로변에서 놀곤 했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 대로변이라는 게 차도 다니는 큰길이기에 굉장히 위험하다 생각할 수 있고 말리지 않은 어른들이 이상한 거 아닌가? 싶은 곳이지만 사실 그 당시 차가 있는 집은 귀했다. 골목안쪽 집에선 주인집을 제외하고 아무도 차가 없었으며 주인집도 일하기 위한 용도로 쓰던 파란 포터가 전부였던 거 같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동네에선 자동차란 것을 보기 흔치 않았으며 그랬기에 대로변에 다니는 차도 한 시간에 한 두대정도가 지나갈 뿐이었기에 그곳은 우리들의 운동장과 같은 곳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동네를 완전 벗어나 큰길로 가면 당시에도 8차선 도로가 나 있었으며 버스, 승용차 할 것 없이 꽤 다니기도 했다. -내가 말하는 대로변이란 윗동네, 아랫동네 사이에 있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우린 대로변에서 자주 다망구를 하고는 했다. 다망구라 부르던 놀이는 잡기놀이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섞인 놀이인데 술래한테 잡히면 전봇대에 손을 붙이고 다른 친구들이 와서 구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기에 술래는 전봇대에 이미 잡아놓은 친구를 지키는 일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잡는 일까지 해야 하는 꽤 고난도의 놀이였고 그만큼 스릴이 있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다. 다망구를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넘어갔고 그날도 산 넘어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신나게 뛰고, 도망가고 하다가 한 시간에 한 두대 볼까 말까 한 자동차와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끼익~"

 "악"

 술래를 피해 도망가던 나는 달려오는 검은색 자동차를 보고 재빠르게 멈추었지만 자동차 왼쪽 앞범퍼에 오른쪽 무릎을 부딪히며 넘어지고 말았다.

 "얘야, 괜찮니? 아저씨랑 병원 가자."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에 깜짝 놀란 차주가 얼른 차에서 내려 나의 동태를 살폈다. 해가 다 질 때까지 숙제도 하지 않고 밖에서, 그것도 대로변에서 뛰어놀다 차에 부딪히기까지 한 9살 소녀의 심장은 엄청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릎이 아프긴 했지만 심하게 부딪힌 것도 아니고 아픔보다는 병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창피함, 집에 가면 혼날 거라는 걱정이 더 컸다.

 "괜찮아요. 안 아파요."

그렇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서둘러 그 자리를 뜨려고 했고 차주도 그렇게 심하게 부딪힌 건 아니라 판단한 건지 바지 주머니에서 찾아낸 500원짜리 동전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고 가던 길로 재빨리 사라졌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이 500원이었기에 나는 이게 웬 횡재인가 하며 신나게 500원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교통사고는 아무 일 없던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날일은 지금까지도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비만 오면 쑤셔대는 내 무릎이 그때 일 때문인 것 같다.


 뒤차 100퍼센트 과실로 판명받고 나는 입원이 아닌 통원치료를 택했다. 일을 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꽤나 큰 충격이었고 뒤 범퍼가 완전히 아작난 내차는 수리에 들어갔기에 렌터카로 출퇴근하며 격일로 통원치료도 받았다. 핸들을 잡고 있을 때 부딪혀서 그런지 유난히 손목이 날이 갈수록 아파왔다.

 "선생님, 손목이 치료받는데도 왜 날이 갈수록 더 아플까요?"

"원래 교통사고가 나면 바로는 놀라거나 근육이 경직돼서 잘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이 풀리고 서서히 더 아플 수 있어요. 그러니 당분간 계속 치료받으러 오세요."

 교통사고란 것은 첫 날 보다 한참 뒤에 더 아플 수 있단 것,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 알게 된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30년도 더 오래된 그때 차가 있는 집이라면 웬만한 부잣집이 아니었을 것인데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침바늘이 꽂힌 손목과 비 올 때마다 시큰거리는 내 무릎을 보면서 늦어도 한참 늦은 후회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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