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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Mar 06. 2024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산방산, 용머리해안

노오란 유채가 장관이다.

아직 바람이 찬데, 체구도 작은 녀석들이 금빛 한 무더기로 지천에 피었다.

노란 꽃잎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재잘재잘 수다를 떨면서 겨울바람에 몸을 싣고 빈 마음으로 봄을 재촉한다.


유채꽃밭에서 먼발치에 어린 왕자 동화 속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큰 종 같은 것이 우뚝 솟아있다.


산방산이다. 평화롭고 의젓하다.

제주 서남부지역 웬만한 곳에서는 보일 만큼 웅장하다.

작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유채꽃과 달리 온통 바위로 되어 있어 이 산은 어떤 칼바람에도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듯 의연한 모습이다.

흔들림이 많은 유채꽃이 개구쟁이 아이 같다면, 산방산은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켜온 할아버지같이 점잖기만 하다.

참 다른 느낌인데 가족처럼 묘하게 어우러진다.

산방산에서 내려보는 용머리해안의 오래된 지층에 따스한 오후 햇살이 내려앉는다.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울퉁불퉁 불규칙해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대로 지층이 켜켜이 쌓였다.

셀 수도 없는 그 지층이 제주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용머리해안의 나이를 가늠케 한다. 마침 파도가 높지 않아 용머리 해안의 입장이 가능했다.

그 세월을 감히 느껴보기라도 하듯 지층을 쓰다듬는다.

해안 바위에 와서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명쾌하다.

억겁의 시간을 저렇게 지켜왔을 용머리 해안이 오후 햇살에 간지럼을 타듯 주황빛으로 물든다.

'오늘도 수고했다, 애썼다.'

파도가 밀려와 쓰다듬어 주는 듯하다.

산방산이 에메랄드빛 바다를 내려보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듬직한 자태와는 달리 산방산의 유래는 의외였다.


사냥꾼이 화살을 잘못 쏘아 그만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렸단다.

느닷없는 화살에 옥황상제는 얼마나 욱하고 화가 났겠는가? 해서 한라산의 꼭대기를 뽑아서 던져 버렸는데 이것이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태풍으로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이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산방산의 남서쪽으로 200미터 높이에 산방굴사로 올라가 본다.

길이가 10미터 정도 되는데 산방굴사라 하여 불상을 볼 수 있었다.

고려시대 ‘혜일법사’가 정진했던 곳이라 한다. ‘보문사’와 ‘산방사’ 두 개의 사찰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맑은 수정 같은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이 물은 사시사철 떨어져 굴 안에 고이는데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한다. 왜 눈물이라 하였을까?


여기엔 슬픈 전설이 있었다.


하늘나라 선녀였던 산방덕이 화순마을 나무꾼을 사랑하였다네.
나무꾼 고성목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던 예쁜 산방덕이를 이 마을 사또가 탐하고 말았지뭐야.
게다가 남편만을 바라보는 산방덕이를 어떻게든 취하고자,
사또는 고성목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멀리 멀리 보내버렸다고 해.
남편을 그리워하던 산방덕이는 산방굴사로 들어와 목 놓아 울다가 죽게 되버렸어.
그리곤 바위가 되어버린 것이지.
이후에 산방굴사의 천정에서는 똑, 똑, 똑, 세 방울의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믿었다고해. (나무위키)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이라는 진부한 클리셰이지만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그들의 사랑,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욱 애틋하였을테다.  

못된 사또가 권력을 남용하여 남의 부인을 탐하려 하였고,

심지어 남편에게 죄를 씌워 멀리 보내버리기까지 하였으니 

당시 힘없는 산방덕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이리도 애틋하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죽어서도 그 사랑을 지키고자, 바위가 되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산방굴사를 보며 산방덕이의 마음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요즘처럼 클릭 하나로 원하는 가상공간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쉽게 정보를 취하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랑이다.


멀리 유채꽃밭에서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들, 커플 옷을 차려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 친구들이 마냥 행복한 모습이다. 노오란 유채와 그대로 하나의 풍경이 된다.


산방덕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켰듯이,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이

흐드러진 유채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길 바라며 산방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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