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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Mar 13. 2024

바다가 보이는 산사(山寺)에서,

약천사

서귀포를 지나는데 약천사 팻말이 보인다. 언젠가 금자 씨가 유방암에 걸렸을 때 템플스테이를 했다는 곳이 저곳이었구나 문득 생각이 났다. 금자씨는 나의 가장 지혜로운 친구이다.



그녀가 내 나이즈음에 암에 걸렸었다고 했다. 

암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운데, 금자 씨는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얼마 살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단다. 항암 중에 다행히 의사의 오진으로 판명나 전이는 되지 않았음을 알았고 이후 이곳 약천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몸을 추슬렀다고 했다.


살아온 인생도 힘겨웠는데 암까지 따라붙었다며 허허거리던 그녀의 공허한 웃음이 생각났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문득 그녀가 생각나 내친김에 약천사에 들렀다.


제주도에 있는 절답게 돌하르방이 반긴다. 

그 옆으로 키가 큰 야자수가 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약천사를 더욱 정겹게 한다. 

제주이기에 가능한 그림이다. 약천사와 돌하르방, 야자수가 이질감을 주지만 또 같이 어우러져 제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교회를 다녀서 산사의 분위기가 익숙하진 않지만 절 주변을 조용히 산책해 보기로 한다. 

동양최대규모의 웅장한 법당, 국내 최대 목조불상이 자리한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계절마다 피어날 예쁜 꽃나무들과 하귤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흙탕물이 가라앉듯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서귀포 저 아랫사람들은 생을 살아내느라 아등바등인데 절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평안해지는 다른 세상이다. 

그물처럼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게 만들고 웅장한 법당아래 얌전히 손을 모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세상의 쾌락과 더러움을 덕지덕지 묻혀온 내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는다. 



사철 흐르는 약수가 있는 약천사의 연못.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고 그들의 병을 나았다지.

오백나한전의 처마 위로 살포시 고개를 숙여 그늘을 만드는 소나무와 정갈한 수평선을 경계로 푸른빛을 내는 서귀포바다는 봄이다. 


금자 씨도 이곳의 물을 매일 마셨겠구나. 

한 바가지 물을 퍼서 수줍게 마셔보았다. 맛있다.


내가 사랑한 금자 씨는 여기에서 생과 사를 줄다리기하며 두 손 모으고 매일 저 바다를 보았겠구나.


잘 살아가는 것도, 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모두 아름다운 일이다.


이곳에서 아픈 사람들이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종교가 할 일을 충실히 해 낸 것이리라.


문득 그녀가 많이 그리웠다. 서울로 돌아가면 금자 씨와 함께 따뜻한 밥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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