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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Oct 16. 2023

낯선 남자 in 낯선 곳


   “뉴스 속보입니다. 서울 서초 경찰서는 처음 보는 중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고 한 혐의로 10대 A군의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습니다.”


   TV를 켜니 연합뉴스의 앵커가 속보를 내 보낸다. A군은 십 대이고 양재동 한 산책로에서 B양을 협박하여 흉기를 휘두르고 도주한 혐의로 붙잡혔다.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이미 일주일 전부터 식칼과 흉기, 망치를 구입했었누구든지 해치려고 했다고 진술했단다.


올해 이런 묻지 마 살인이 우리 사회에 심심찮게 들려왔다. 하물며 이런 10대까지 범행을 미리 계획하고 아무나 골라 폭행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지난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 저성장 그리고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었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여지없이 많은 정치적 갈등과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끊이지 않았다.


최근의 이런 묻지 마 범죄들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스며든 분노와 불만이 얼마나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뉴스에서 들려오는 이런 소식들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따스한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 또한 보이지 않게 많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오랜 세월 알아 온 지인이 아닌, 낯선 이들에게서 기대하지 못했던 따뜻한 경험을 하게 될 때도 있다.

     

4. 낯선 남자 in 스타벅스

    

   2003년 미국 중부 시카고의 여름은 유난히 덥고 지루했다. 남편이 직장 인터뷰로 한국에 귀국한 후 어린아이 둘을 혼자 돌보게 되었다. 연년생 두 아이와 생활하려니 챙길 것도 많았고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리니 자동차에 카시트도 두 개에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남편이 도와주었던 터라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장을 보러 갈 때도, 2층 타운하우스를 오르내리는 카펫 청소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드는지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시카고의 복잡한 거리를 운전하다가 남부의 할렘가를 잘못 들어서면 흑인들만 보여도 겁이 덜컥 났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여지없이 가슴에 방망이질을 해댔다. 그리고 킨더에서 아이들을 챙겨 오후 시간 라이드 하는 일 등은 엄마인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친 일상에 나에게 쉼이 되는 유일한 시간은 혼자 운전해서 찾아간 스타벅스에서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바쁜 일과로 카페에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아 드라이브 스루로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장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내 차 앞으로도 여러 대의 차들이 줄 서 있는 걸 보니 꽤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차를 천천히 운전해 갔다. 커피를 건네는 스타벅스 점원, 백인 아가씨의 목소리가 바쁘다.


  “라떼 한잔 맞죠? 여기 주문하신 라떼입니다.”


  “네, 얼마죠?”


  “하하하, 안 내셔도 돼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앞차 보이시죠? 손님 앞에 주문하신 분이 미리 계산하고 가셨어요.”    

 

  그제야 놀란 나는 바로 내 차 앞에서 운전해서 가게를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는 앞차 번호를 허둥지둥 보았다. 교회 아는 분인가 했는데, 내가 아는 차가 아니었다.

     

  “저분이 나를 안다고 하던가요?”

  “하하, 아니요. 그냥 뒤에 계신 분을 위해 친절을 베풀고 싶다고 하시면서 지불하셨어요.”     


  운전해 가는 뒷모습에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연륜이 있으신 분이었다. 당황해하는 내 모습이 보였는지 차의 창문을 내려 주름진 손을 흔들며 유유히 운전해 가셨다. 가슴이 먹먹해왔다. 감사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즈음 미국에서는 어려운 경제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이런 운동(pay it forward)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커피 맛있게 드세요. 다음에 또 봐요.”


  스타벅스 점원 여자의 목소리가 청량한 음료 같았다.


 커피를 한잔 받아 들고 운전하는데 유난히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내 생활이 여유롭지 못해 타인을 돌아볼 수도 없는 하루하루인데 낯선 이의 ‘묻지 마 친절’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많은 것을 누리고 가졌음에도 늘 힘들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집으로 운전해 오면서도 맛있는 커피를 선물한 그분의 마음이 자꾸만 고맙다.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해야지, 더 베풀어야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나도 커피 한잔의 기쁨을 전할 수 있도록.


  이후 NBC 뉴스를 보니 플로리다주에서  드라이브 스루 스타벅스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뒷사람의 커피값을 대신 내주는, 앞서서 선행을 베푸는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가 릴레이로 이어졌다고 했다.


  코로나가 한참이던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에 커피 한 잔 사러 갔던 한 시민이 룸미러를 통해 젊은 남녀 소방구급대원이 구급차를 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였단다. 날씨도 화창해서 다들 꽃놀이 가는데 마음이 짠하여 구급대원들의 커피값을 흔쾌히 계산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당시 대원들은 신종 코로나 대응 업무를 위한 마스크와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참 선한 마음이다.


  그 이후로도 돈과 혼쭐을 합쳐 ‘돈쭐’을 낸 사연들도 종종 뉴스를 통해 들었다. 요즘처럼 각박한 사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 정의로운 일을 해서 모범이 된 피자가게, 치킨가게를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했단다. ‘돈으로 혼나봐야 한다’, 좋은 일을 했으니 돈 버느라 바빠봐야 정신 차리지 라는 뜻으로 돈쭐을 낸 것이다. 재밌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이러한 단어에 기겁을 하실지, 웃으실지 모르겠다.


  한 해가 끝나가는 요즘, 지난 우리 사회에 일어난 여러 가지 묻지 마 사건들, 정치적인 이슈들,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무리들, 안타까운 소식이 너무 많았다. 내 것만 주장하고, 내 마음만 내 세우다 보면 묻지 마 범죄들은 언제든 고개를 내 밀 것이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내 옆에 있는 누구나 붙들고 묻지 마 친절,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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