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글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하고 깊어야 할 것 같다. 글씨를 늘어놓은 것이 글일 뿐인데, 내가 써 놓은 것들의 조합에 글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왠지 부끄럽고 과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글’이라고 부르지 않고 ‘끄적거림’이라는 표현을 하며 뭐든 계속 써왔다.
그러다 문득 대놓고 글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을 쓰고 싶어서 가슴이 웅장해지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땐 끄적거림에서 좀 더 보완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글이라고 작정하고 쓰면 쓸수록 필력의 한계에 부딪혀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만, 그럼에도 쓰고 또 쓰다 보면 어쩐지 내 표정이 한껏 밝아져 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용기를 부추겨 행동으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그런 욕망이 늘 글쓰기였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 더 많이 읽고 싶어지는 것처럼, 쓰다 보면 더 쓰고 싶어진다.
쓰지 않으면 잊고 버려지는 게 너무나 많다. 찰나의 생각, 감정, 일상의 순간들 말이다. 살면서 많은 순간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휘발되기도 한다. 하지만 글로써 남긴다면 많은 것들이 선명해진다. 특히 지나간 시간 속에서 느낀 통찰에 대해 쓴 글을 다시 보면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치 내가 썼던 글이 그때의 내 시간을 붙잡아 두는 것 같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글이 되는 과정은 참 재밌다. 감정이 넘쳐서 글로 적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다이어리에 적은 글, 자다가 갑자기 쓸 것이 생각나 어둠 속에서 휘갈겨 쓴 메모,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노트북에 풀어낸 잔뜩 쌓인 글들, 누군가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수십 편의 시. 복잡하기만 한 생각이 글로 적고 나면 단순해지기도 하고, 단순하다고 치부했던 감정이 그 어떤 단어를 갖다 대도 표현이 안 될 만큼 난해할 때도 있다.
내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을 글로 끄집어낸 후에는 문장의 완성도를 떠나 묘한 흡족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내 이야기가 글로 확장되고, 때로는 쓴다는 것 자체로 어떠한 통찰로 이어지는 선물같은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건 삶에서 나를 다듬고 완성해 가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