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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나무 Jun 18. 2024

읽다가

책을 대하는 자세

어릴 때부터 내 손에 들어온 모든 책은 조심히 대해왔다.


책을 완전히 펼쳐서 읽으면 자리가 남거나 내지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히 펼쳐서 읽었고, 손에 땀이 많은 편이라 책에 땀자국이 나는 게 싫어 최대한 지문 쪽이 종이에 닿지 않게 신경 쓰기도 했다. 혹시나 심하게 구겨지기라도 하면 내 인상도 함께 구겨졌다.


교과서나 문제집은 조심히 다루려야 그럴 수가 없었지만 학기 초에 투명 포장지로 포장하는 일은 거르지 않았고, 필요한 메모나 줄 긋기 외에 낙서 같은 것도 거의 하지 않았다.


책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이 모습은 그저 조심스럽고 유난히 깔끔 떠는 내 성격에서 비롯되었지만, 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다.   


한때는 화려한 색의 형광펜이나 색연필을 사용해 책에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책마다 어울릴 것 같은 색을 신중히 골랐는데, 책을 읽기 전 나름의 재미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접착메모지도 많이 활용했는데 내용에 참견하고 싶어 입술이 실룩거릴 때마다 글 위에 내 생각을 꾹꾹 눌러써서 덧붙이곤 했다.


지금은 내지에 다른 색을 곁들이지 않는다. 대신 책을 읽을 때 인덱스스티커를 늘 옆에 두고 사용한다. 페이지 전체를 기억하고 싶으면 윗부분에, 문장을 기억하고 싶으면 문장이 시작되는 줄에 맞춰 옆부분에 스티커를 붙인다. 어떤 문장은 특별히 다이어리나 필사노트에 따로 기록해 두기도 한다.


책의 개수만큼이나 책을 대하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어떤 모습이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책을 소중히 대할 것이다. 그것이 깨끗함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나처럼 책이 구겨지는 게 싫어 조심히 대하며 스티커를 가득 붙이며 읽는 사람도 있을 테고,  책 내용에 자신의 생각을 꺼내 또 하나의 내용을 책 속에 거뭇하게 입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 누군가는 문장에 줄을 그어가며 행간에 숨겨진 통찰을 얻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간직하고 있는 책들 중에는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거나 보기에도 낡은 책들이 꽤 있다. 책은 어떻게 대하던지 그 자체로도 빛난다. 그러니 나에게 온 모든 책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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