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마음, 펼치는 순간
시를 읽다가 필사를 하려고 새 노트를 찾았다.
아끼느라 사용하지 않은 노트들 사이에서 며칠 전 선물 받은, 그러니까 가장 최근에 갖게 된 노트를 꺼내 들었다.
아껴둔 것을 꺼내 쓰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더 쉽게 손이 간다.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새것의 포장을 과감히 뜯게 된다.
처음부터 아껴두었던 것들에는 시간이 지나며 마음까지 쌓이는 걸까?
나중에 읽으려고 모셔둔 책도 그렇다.
기대에 부풀어 주문하고, 도착을 기다리며 설렘을 느꼈을 텐데, 막상 손에 넣고 나면 그냥 두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펼치지 않은 책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결국, 약간의 결심을 하고서야 겨우 첫 장을 넘긴다.
그 순간, 처음 책을 받았을 때의 설렘은 이미 바래 있고, 기대감도 덜하다.
바로 읽었다면 더 깊이 빠져들었을까?
아마도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늦게 펼친 책이 덜 소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묵혀둔 시간만큼 또 다른 의미가 더해질지도 모른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문장이 가슴에 닿고,
그동안 쌓인 경험이 책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새것을 쉽게 집어 드는 마음과, 오래 아껴둔 것을 꺼내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는 가벼운 설렘이고, 하나는 쌓인 시간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필요한 건, 너무 늦기 전에 결국 그것을 꺼내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한다.
지금, 책을 펼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