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가

어디에 쓸까

by 글쓰는나무

내 공간의 한편에는 언제든 메모할 수 있게 위클리노트가 놓여 있다. 해야 할 것들과 더불어 문득 돋은 생각들과 어딘가에서 접한 말들 등을 적는 다용도 노트이다.

일기를 다이어리에 바로 적지 않고 이 노트에 대충 적은 다음 일주일치 정도를 한꺼번에 다이어리에 옮겨 적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다듬지 않은 날 것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노트에 적은 내용의 1/3 정도는 취소선으로 채워져 있다.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흔적들이다.

쓰기를 등한시할 때 조바심이 나는데, 노트에 문장 하나라도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면 적당히 만족스러운 환기의 시간이 된다.

간혹 쓰는 속도가 생각의 흐름을 못 따라갈 때가 있는데 볼펜을 아무리 빨리 굴려도 생각이 글자로 연결되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 그 생각이 재생되면 좋을 테지만 증발되기라도 하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그럴 땐 노트북이 제격이다. 아무리 흩어져 있고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생각도 노트북에서는 길을 잃는 법이 잘 없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 자음과 모음을 누를 때의 경쾌한 소음은 덤이다.

때로는 뭔가 장황하게 쓰고 싶어질 때 노트북을 켜는데, 늘어지게 쓰다 보면 노트나 핸드폰에 쓸 때보다 생각 정리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

다만, 필요하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노트북의 전원버튼을 누르지만 쓰기의 도구로는 다른 것들에 비해 거창한 느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와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따른다.


핸드폰 속 노트앱은 핸드폰 내 기능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핸드폰이야 늘 손에 쥐고 있으니 습관처럼 생각을 옮겨 적는다.

종이와 볼펜을 꺼낼 필요도 없고, 덩치가 큰 노트북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이동하면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함은 물론, 집에서도 간편하게 앱을 열어 적으면 되니 편리함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그래서 생각의 작은 조각에서 큰 덩어리까지 많은 글들이 담겨있다.

희한하게 핸드폰에 쓰다 보면 마무리가 덜 된 문장을 쓸 때가 많은데, 보통 이런 문장들은 나중에 가서도 매듭을 짓기가 잘 안 된다. 내가 핸드폰에 쓰면서 들인 잘못된 버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쓰다가 생각이 막혀 자꾸만 머뭇거리게 될 때 쓰는 도구를 바꾸면 좀 더 수월히 써지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내게 머문 생각들이 또렷해지기도, 두루뭉술해지기도, 날카로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중요한 건, 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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