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인 교회를 가다
나는 종교가 없다. 천주교 집안이었던 아버지, 불교 집안이었던 어머니는 두 분조차 신실한 종교인이 아니었기에 두 딸에게 어떤 종교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여러 종교를 탐방하고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아버지를 따라 부활절 성당에 놀러 가기도 했고, 방학 때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계곡에서 물놀이할 겸 사찰 체험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학교 마치고 예수를 믿으라며 떡볶이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을 따라가 성경 말씀을 배우기도 했다.
이렇게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큰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무교인 나와 동생이 혹여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던지 미국 교회는 한국 교회와는 아주 다르다며, 종교 단체보다는 사교적인 공동체의 모습이라 우리가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홈스테이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다니는 교회는 집 근처 작은 규모의 한인 교회였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들부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교인들이 있었다. 두 분 내외는 "집사님"으로 불리며,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교회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셨다. 특히 아주머니는 성가대를 맡고 계셨는데 아주머니에게 좋은 활력소이자 보람인 듯 보였다. 교회에는 청소년부가 있었는데 한국 학생들이 대여섯 있었고, 몽골계 미국인이라는 대학생 셋이 임원을 맡아 청소년부를 이끌고 있었다.
청소년부에 속한 한국 학생 중 셋은 목사님의 자녀들이었는데,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고 했다. 나머지 둘은 형제였고, 또 한 명의 남자 학생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모두 미국 출생으로 한국어를 알아듣긴 하지만 말하기가 서툴러 한국어로 소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대부분 나와 나이가 같거나 한두 살 차이로 또래였다. 그중 세 명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한국 문화가 더 익숙한, 소위 말하는 "FOB"들과 어울렸기에 청소년부가 아니면 친해질 기회가 없던 친구들이었다.
지금처럼 미국 내에서 한국의 문화가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 내 한인 교포들 사이에서는 한국 학생들을 Banana와 Fob으로 나누어 구분하곤 했다. 바나나는 주로 서양 문화에 더 동화된 아시아계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바나나가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얗다는 점에 빗대어, 겉모습은 아시아인이지만 사고방식이나 생활 습관은 서양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한인 교포 사회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릴 때 이민 와서 주로 영어를 쓰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banana"라고 불렀다. 이와 반대로 FOB (Fresh Off the Boat)은 '배에서 갓 내린 사람'이라는 직역에서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최근에 이민 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한국 문화에 더 익숙하고 영어가 서툰 학생들을 부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Banana와 FOB 둘 다 부정적인 뉘앙스와 편견을 담고 있기에, 주로 서로를 비하하는 상황에서 자주 쓰였다.
청소년부는 우리끼리 하는 활동이 많았다. 어른들과 함께하는 예배 시간 외에도 다양한 봉사 활동과 게임, 사교 모임이 자주 있었고, 한국 수련회 느낌이 나는 캠핑과 야외 활동도 즐겼다. 금요일 저녁이면 자연스럽게 임원들 집에 모여 피자를 먹고 영화를 보며, 미국 드라마에서 보던 것 같은 sleepover를 했다. 한국에서는 엄격한 부모님 때문에 한 번도 친구 집에서 자본 적이 없던 우리는 묘한 해방감과 짜릿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많은 위로도 받았다. 한국에서 입시로 힘들었던 기억, 미국에 와서 적응하며 겪은 어려움, 그리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오래된 상처를 나누며 치유하는 기회가 되었다. 여기서 태어난 친구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부모님과 소통의 어려움, 그로 인한 마찰 등 내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던 어려움을 나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자연스럽게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마음 깊이 의지하게 되었다.
태어나 처음 공부했던 성경 내용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옛날이야기처럼 아득했지만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책의 구절보다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던 것이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