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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Sep 17. 2024

여기가 한국인가요?

미국에서의 첫 고등학교 생활, 그리고 소중한 첫 만남

  홈스테이 했던 지역은 워싱턴주 시애틀 근교에서도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머킬티오라는 이름의 항구 도시였다. 그중에서도 하버포인트라는 동네는 다른 부근에 비해 깔끔하고 잘 정돈된 환경에 학군도 뛰어났다. 내가 다니게 된 고등학교는 바로 이 하버포인트 중심에 위치한 학교로, 이 천 명이 넘는 학생이 다니는 큰 규모의 공립학교였다. 학교의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아시안이었고, 그중의 대다수가 한국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내가 영어를 못해도 적응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첫 등교 전날 밤,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했다. 절대로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자며 단단히 다짐도 했다. 지난번 방문 이후로 어느덧 나는 스탠퍼드 입학을 꿈꾸고 있었고, 대학 입시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나의 목표는 영어 실력을 키우며 좋은 내신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었기에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꿈에서 몇 년 전 텍사스의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처럼 넓은 캠퍼스 위 백인 친구들과 어울려 걷는 내 뒷모습이 보였다.




  대망의 첫날 아침,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잘 먹어야 힘을 낸다며 내용물을 잔뜩 넣은 두꺼운 한국식 토스트를 만들어주셨다. 한국에서는 늘 부모님이 우리보다 먼저 출근하셨기에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배웅이 낯설었다. 홈스테이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차로 데려다주시겠다는 걸 거절하느라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날도 추운데 차 타고 가면 좀 좋아. 우리가 공짜로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툴툴거리는 동생을 달래서 학교로 발걸음을 향했다. 동생은 우리 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영어라곤 간단한 인사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동생이 걱정되었지만 내 코가 석 자인지라 그 애의 어려움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동생과 헤어진 나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 먼저 학교 사무실을 들렀다. 한국으로 치면 담임선생님 같은 역할의 카운슬러를 만나서 앞으로 1학기 동안 수강할 과목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과목을 내가 직접 선택해서 듣다니 미국 학교에 다니는 것이 실감 났다. 과목 선정에 앞서 치렀던 영어(ELL) 시험에서 한국에서 입시 영어로 내실을 다져왔던 덕분인지 손쉽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시험을 감독했던 ELL 교사는 나는 따로 ELL 수업을 안 들어도 될 것 같다며 일반 영어 수업을 듣는 대신 적응 차 낮은 레벨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듣고 있던 카운슬러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하며 영어 외에도 여러 수업을 정해주었고 아직 교실 위치가 익숙하지 않은 나를 위해 기꺼이 1교시 수업에 동행해 주었다.


  1교시 수업은 영어 수업이었는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이지만 일반 학년 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이 모여 듣는 수업이라고 했다.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맨 뒷줄에 앉은 백인 남학생 몇몇은 하나같이 피어싱에 바지가 골반 밑까지 내려가 속옷이 다 보이는 차림새로, 누가 보아도 불량 학생들처럼 보였다. 한국인 학생은 물론 아시안 학생은 나뿐이었다. 영어 선생님이 쭈뼛거리는 나를 교실 한가운데 세우고 소개하며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니, 친절하게 잘 대해주라는 당부를 더했다. 나는 가장 조용해 보이는 백인 여학생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긴 생머리에 짙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던 학생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엘레나'라는 이름을 소개했다. 엘레나는 지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알아듣기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해 주기도 하고 잘하고 있다며 격려해 주기도 했다. 한국에 있었을 때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상상하면 Mean Girls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영화를 떠올리며 내가 그런 백인 여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하곤 했었는데, 엘레나는 그 영화에 나오는 백인 여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다정하고 사려 깊었다. 학교 첫날 좋은 학급 친구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다음 수업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한국의 대학교처럼 학생들이 수강 교실을 찾아 이동해야 하는 미국 고등학교 특성상, 쉬는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졌다. 화장실을 가는 것은 진즉 포기하고 몇 채씩 되는 건물 사이에서 다음 교실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 대부분이 아시안이었고 간혹 한국어가 들렸다. "아니 그래서 걔 너무 크륀지 하지 않냐? 낫 댓 아이 신경 써"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여 뜻을 알 수 없는 말이 예능 프로에서 개그맨들이 교포 흉내를 내는 것처럼 들려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차저차 도착한 2교시 수업, 그리고 3교시 지나 4교시까지. 첫날인지라 여러 면에서 서툴렀지만, 큰 실수 없이 잘 흘러갔다. 내 특유의 예민함은 꼼꼼함으로 발현되어 한국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노트 필기도 하고 매 수업 최선을 다했다. 점심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백인 여학생 대여섯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빈자리 하나가 보였고, 이때다 싶어 같이 밥을 먹어도 되는지 호기롭게 물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나를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나는 원래부터 그 무리의 일원인 양 그들의 이야기에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기도 했다. 물론 90% 이상은 못 알아듣는 이야기였지만 그런 사실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밥을 거의 다 먹고 일어서려던 찰나, 옆에 앉은 학생 하나가 내가 들고 있는 시간표를 보더니 5교시가 같은 체육 수업이라면서 점심 먹고 본인은 다녀올 데가 있으니 그동안 라커(사물함) 앞에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랬다. 20분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그 친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 같다는 생각에 체육관으로 향했는데 여전히 그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실은 그 친구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가뜩이나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가 인종이 다르다 보니 내 눈엔 모든 백인 여학생이 다 비슷하게 보였다. 첫 수업 때 봤던 친구처럼 눈에 띄게 긴 머리라든지 뿔테안경처럼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장신구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더욱 난감했다. 그렇게 그 친구가 정말 나와 같은 반이었는지 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체육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읽고 쓸 줄만 알았지, 원어민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내 영어 실력에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무렵 이번에는 한 아시안 여학생이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지?" 밝게 염색한 머리와 샤기컷, 카고바지까지.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유행했던 스타일을 보자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은 초등학교 때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미국에 온 지는 몇 년 안 되었다면서 대뜸 내 나이를 물었다. 미국 나이를 알려줘야 하는 걸까 한국 나이를 알려줘야 하는 걸까 고민하다가 결국 94년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대답에 그 학생은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보이더니 본인은 93년생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 동생이 생겨서 좋다고 했다. 졸지에 한국 언니가 생겨버린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93년생 언니라니. 한국에서 나는 빠른 연생으로, 학교에 일찍 입학해서 친구들이 모두 93년생인 상황이었지만 왠지 구태여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하루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고갈한 듯 몸에 힘이 없었기 때문인 것도 한몫했다. 이 한순간의 결정이 후에 새로 사귄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혼란을 야기할지,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어가 빨리 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국인 친구들과 멀리하고자 했던 처음 다짐과는 다르게 나는 점점 한국 친구들이 늘어갔다. 93년생 언니를 시작으로 그 언니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 나의 점심 그룹은 당장 그 언니를 알게 된 다음 날부터 완전히 바뀌어 버렸는데 같은 그룹에서 영원히 내 인생을 뒤바꿀 사람 또한 만나게 되었으니, 그건 바로...


  현재의 남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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