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단 한 조각이라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할머니와 나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전공 때문에 바빠지면서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했을 때에도,
매일 저녁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화할 때면
이야기는 끝없이 솟아나 한참을 떠들곤 했다.
말이란 참 그렇다.
누군가에겐 가시이고, 칼이 되면서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할 때는 힘이 되어주는.
때로는 매일 거는 전화가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전화의 마무리에서 위로를 얻고 끝내는 쪽은
항상 나였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60년의 거리가 무색할 만큼
나를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었던 할머니의 말에는
언제나 사랑과 위로가 있었다.
할머니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일을
끄집어내 전할 때에도,
할머니는 언제나 이해와 격려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 사이엔 못하는 말이 없었고,
때론 ‘가족’이란 틀을 벗어나
오직 우리 둘만 나누는 이야기들도 가득했다.
하지만 뇌경색이란 병은
나의 절친한 친구를 앗아가듯,
할머니에게서 언어를 빼앗아갔다.
언어가 사라져 버린 자리에는
기억의 잔재를 끌어모은 부서진 말의 조각만 남았다.
한번 대화를 하려면 손짓 발짓을 하지 않고서는
이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 서로를 위했고 이해했던 우리는
이제 없다.
그저 서로를 계속 짐작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