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by 어제의 오늘


할머니의 입원 이후로 가장 크게 바뀐 게 있다면

할머니가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아니 못하게 되었다가 더 잘 맞는 말이려나.


뇌를 다친지라 불을 사용하는 일은

이제 너무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고,

집에는 가스레인지 차단기가 설치됐다.


할머니의 90여 년에 가까운 일생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라면

당연 부엌일 텐데.


요리를 하지 못하게 된 나의 할머니는

때론 아주 좋아했던 장난감을 뺏긴 어린아이마냥

기운이 없었다.




이후 다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감시하에 만들어야 하는 요리는

이미 판단력을 잃어버린 머리로 고른 조미료와 함께

때때로 자주 엉망이었다.


슬프게도 미각만큼은 그대로였기에

평생의 자부심이었던 그녀의 요리는

도리어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런 고로 나는 요즘 미각을 잃었다.

아 실제로 잃었다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할머니의 음식 앞에서는 그렇다.

다시다로 배추를 재워 만든 김치도,

간을 맞추지 못한 겉절이도

내게는 모두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건강과 더불어 무너진 일상의 빈자리는

대체로 우울감과 무기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


기운 없이 누워있는 할머니 옆에서

나는 함께 누워 눈을 맞추고 손을 꼭 잡을 뿐이었다.


한 번씩,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

얼른 죽어야 하는데..’ 하는 말들을 하시곤 하는데

잃어버린 말들 사이에서 그 단어들은

왜 그렇게도 또렷이 그려지는지.


평생 한 번도 내 앞에서 뱉은 적 없는 말이었는데.

이제 겨우 앉을 법한 갓난아이가 대뜸

집으로 보내져 은퇴 후의 일상을 모두 뒤바꿨을 때에도

유독 조용하고 말을 잘 들었던 막내아들을

남편보다 먼저 보냈을 때에도

할머니는 한 번도 삶의 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는 언제나 미래가 있었고,

할머니는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하고

나와의 일상을 꿈꾸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하고

그 미래를 붙잡고는 했다.


근데 이제 와서야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결국 생각은 돌고 돌아 마침표는 내게로 지어졌다.

어쩌면, 내가 붙잡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종국에는 이 고통의 세계에 나를 홀로 두지 말라고

떠나려는 할머니의 발걸음을 붙잡아버린 건

결국 못난 손녀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을 나는 어쩌면 알았는데,

할머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던 내가

나의 안식처를 붙잡으려

그녀를 다시 이곳에 눌러 앉힌 건가.


기운 없는 할머니의 눈동자에 죽음이 어릴 때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내 욕심이었나 후회했다.

나의 이기심으로 끝을 내지 못하게

질질 끌게 만든 걸까 하는 생각에 슬퍼졌다.


대체 어떻게 해야 완벽한 엔딩인 걸까?

우리네 인생에 그런 게 존재하긴 하는 건가.

평생의 고통을 끝내지도 못하게 연장시켜 버린 건

어쩌면 기적이 아닌 실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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