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누군가를 갉아먹는 사랑

by 어제의 오늘

최근 방영 중인 한 드라마에서 ‘수지’가 분한 역할의

한 대사 중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갉아먹으면서 컸구나.



지난주에는 내 생일이었다.

매년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일이다.

올해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일 답지 않게 하루를 보내보려고 했지만,

안부처럼 묻는 ‘미역국을 먹었냐’는 질문에

더 이상은 거짓말할 수 없어

스스로를 위한 미역국을 끓였다.


할머니가 아프시고 나서 반찬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할머니를 위한 미역국은 수십 번을 끓였으면서,

나를 위해 끓인 미역국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그 미역국을 먹는 날에는 덤덤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던 나에게 집중했었는데,

글을 쓰는 지금은 내가 없는 시절에는

누가 할머니에게 미역국을 끓여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든다.






실은 미역국을 끓여 다 같이 나누어 먹을 참이었다.

큰아빠와 다투기 전까지는.

프리랜서인 내 직업 특성상 자주 변경되는 일정에

서로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더 이상 나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듯 마구잡이로

던져지는 말들에 지쳐버린 걸까.

이번에는 나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며칠을 연락도, 집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이런 적막이 깨진 것은

할머니의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잘 되지도 않는 단어를 붙여가며

할머니는 한참을 나를 달랬다.

호칭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 거라고 큰아빠를 대변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맞서려고 할수록, 우리가 부딪힐수록

결국 손해 보는 것은 할머니뿐이다.

그래서 참아왔던 시간도 많았지만

이제는 머리가 커버린 걸까, 화를 참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져

결국 또 굽히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나조차도

결국은 우리는 늘 할머니를 갉아먹으며

나이 들어가는 존재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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