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이야기
아빠는 왼손 검지 한 마디를 잃었다. 칼부림이 일어난 날, 교실 바닥에 이 사람 저 사람이 엉키는 바람에 잘려 나간 살색 마디는 온전치 못했다. 구급대원이 황급히 그것을 찾아냈지만, 이미 오염 상태가 심각했다. 재건술로 살리기 어려웠다.
천박하면서도 축축했던 소문은 괴이한 호러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손가락이 잘린 유부남과 5층 옥상에서 뛰어내린 여교사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떠들진 못했다. 끈적했던 추문은 온갖 공중파 뉴스와 포탈 메인 기사로 도배가 될 정도로 그 덩치를 키웠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때까지 끝나지 않을 거만 같던 돌림노래는 다행히 사흘이 지나자 잠잠해졌다.
나는 잠시 학교를 쉬기로 했다.
“ 윤아. 엄마랑 여행 다녀올까.”
엄마도 휴직을 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우리 두 사람은 죄인처럼 1주일 동안 집 안에만 갇혀 있었다. 핸드폰 전원을 끈 엄마는 자꾸 울리는 벨 소리에 인터폰 전원도 꺼버렸다. 병원에 입원한 아빠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후 불면 파스라질 거 같은 엄마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동굴로 들어왔다. 바닥을 훑는 감정과 시간의 느린 흐름, 무료하면서도 숨이 막힐 듯한 이 기분을 딱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누나가 죽은 2년 전 크리스마스.
그때의 슬픔은 강이 되어 흐르고 흘러 아직도 나의 가슴 한구석에서 출렁인다. 지금도 코끝에 향냄새가 맡아진다. 기억이 냄새를 불러내면 나는 침대 안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눕는다. 울고 싶을 만큼 다 울고 나면 조이던 심장이 괜찮아진다.
“ 제주도 어때. 윤아.”
“ 당근 주스 먹으러?”
“ 풋. 그래 당근 주스도 먹고 보말 칼국수도 먹자.”
“ 좋아.”
“ 내일 어때.”
“ 좋아.”
우리는 대단한 사명감을 부여받은 자들처럼 엄숙하게 가방에 옷가지를 담았다. 날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옷들은 부피가 컸다. 점퍼와 후드티, 목폴라와 청바지와 나이키 바지를 접어 넣었다. 속옷과 양말, 오름도 오를 거 같아서 장갑과 모자도 챙겼다. 언제 전원을 켤진 모르겠지만 패드와 핸드폰, 그리고 책 몇 권도 챙겼다. 책은 읽기나 할까. 괜히 짐이 되지 않을까 잠시 갈등했다. 컴컴한 동굴 안에 작은 모닥불이 하나 켜지고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 항공권 예약 성공! 내일 아침 9시 제주행 출발. ”
식탁에 앉은 엄마의 뒷모습이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상쾌했지만, 표정은 보지 못했다. 엄마는 언제 핸드폰을 켰을까. 그때의 손가락은 얼마나 떨리고 망설였을까. 세상으로 이어진 네모난 플라스틱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우수수 득달같이 몰아치는 메시지들은 꺼지는 전원 소리와 함께 으스러졌다. 그래, 한꺼번에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준비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도 충분하다.
“ 윤이, 김치볶음밥?”
뒤돌아보는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통통 튄다. 나는 우울한 생각을 거두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다. 좋다. 말이 끝나자 정말 배고픔이 몰려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때가 훨씬 지나 있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도 배고프고, 밥 먹고, 졸리고, 잠자고. 일상은 고집스럽게 이어졌다.
삐삐삐삐삐삑
김치볶음밥을 한 그릇 다 비우고 설거지를 하겠다고 엄마를 밀어냈을 때다. 도어락이 열리는 기계음에 쭈뼛 세운 신경이 현관 쪽을 향했다.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올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아빠가 검은색 점퍼를 입고 헤실거리며 현관에 서 있었다. 아래는 환자복 바지 그대로였고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 색이 벌겋다.
미치기라도 한 건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었다. 옆에 선 엄마가 현관 쪽으로 걸음을 떼며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방금까지만 해도 훈훈해지려고 했던 온기가 빠르게 식어갔다. 여러모로 오영훈씨는 대단한 분이다. 나는 손에 낀 분홍색 고무장갑을 만지작거렸다. 그냥 아빠도 보고 싶진 않지만, 정신이 나가버린 아빠는 더 볼 자신이 없어서다.
“ 뭐, 뭐하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에 위험을 직감한 나는 후다닥 복도 쪽으로 뛰어갔다. 미친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 그걸 며칠 전에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엄마는, 내게 남은 유일한 사람이다. 더 이상은 안된다. 세상이 아무리 엿 같아도 엄마까진 진짜 아니잖아. 왼쪽 가슴을 때리는 드럼 소리가 무서울 만큼 귓가에 크게 들렸다. 고무장갑이 아니라 무기가 될 만한 걸 들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아빠는 슬리퍼를 신은 채로 복도로 올라와 엄마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붕대를 감은 왼손은 품 속에 있었고, 멀쩡한 오른손에는 반으로 접힌 종이 조각이 있었다.
“ 진희야.”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무표정하게 앞을 쳐다보다 종이조각을 든 손을 툭 쳐냈다. 유서라도 되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말도 하지 않았다. 말조차 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고개를 아래로 잠깐 숙인 아빠가 종이를 쥔 손으로 턱을 감싸며 풋 웃었다.
덜컥 겁이 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 상황에서 실실 웃고 있는지 무서웠다. 상상은 말도 안 되게 잔인하고 참혹한 깊은 구덩이를 파헤쳤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 서늘한 공기층을 채웠다. 계속되는 침묵에 나는 질식할 거 같았다. 더는 못 참고 엄마를 부르려는 찰나에,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이진희. 봐라. 내 로또 됐다.”
“ 뭐.”
“ 봐라. 1등이다.”
“ 봐봐. 뭐라고.”
“ 씨이팔. 1등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