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그라는 데. 왜 우는데.”
정희의 한쪽 눈이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세게 긁으면서 서둘러 흐르는 것을 정리했다. 손바닥에 축축한 물기를 느끼며 돌아본 사육 상자 안 캐터피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초록색 애벌레에게 인간의 눈이 달렸다면 윙크를 날렸을 것이다.
놀랬냐?
말도 한다면, 이렇게 했겠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나를 정희는 자리에 선 채로 빤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정희에게 탄식 같은 질문을 던졌다.
“ 니 눈 어떡하노. 정희야.”
“ 아, 눈?”
정희는 손바닥으로 불룩한 안대 부근을 감싸듯 그러쥐었다. 어깨를 으쓱 올리며 한 달 동안 치료받고 다시 검사받기로 했단다. 괜찮을 거라고 안과의사도 아닌 초딩 3학년 양정희가 당당히 말했다. 괜한 씩씩함. 나 말고도 자기 엄마한테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둘러댔겠지.
하지만, 나는 알았다. 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그 주변 어른들이 정희에게 어떤 희망과 가능성을 건넸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희의 왼쪽 눈은 이 세상에 안녕을 고했다는 걸.
1교시는 국어였다.
아이들 책상 위에는 두꺼운 국어사전이 한 권씩 올라와 있었다. 우리는 교과서에 색칠된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 그 뜻을 써야 했다. 나는 대들보라는 단어를 찾고 있었다. 아무렇게 펼친 사전에 ‘대가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로 죽 내려가다 찾아야 하는 글자 대들보를 손쉽게 찾았다. 운이 좋았다.
이수현 선생님은 전자 칠판 위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고, 교실은 그럭저럭 조용한 편이었다. 대략 오 분쯤 지났을까. 찾아야 하는 단어를 다 찾은 서너 명의 아이들의 자세가 점점 풀리기 시작했을 때다. 종이 넘기는 소리,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를 뚫고 악역의 음습한 목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 이거 찾아보까. 애꾸. 애꾸. 선생님, 이 사전 이상한데요. 애꾸가 없는데요.”
뭐? 고개를 뒤로 돌린 이수현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문성혁을 노려보았다. 아이들은 웅성거리지도 않고 문성혁과 정희, 그리고 이수현 선생님을 힐끗거렸다. 기묘하게 연결된 삼각형 구도는 위태롭고 불편했다. 양정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사전을 넘기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낀 얇은 종이가 파르르 떨렸다. 교실 안 모두가 문성혁이 지껄이는 애꾸라는 글자의 출처를 알고 있었다. 그간 어깨가 한층 올라가 완벽한 병신으로 진화된 문성혁은 혼자서만 씽글거렸다. 교실에 누구도 웃지 않았다.
“ 그 단어는 책에 없는데. 책에 있는 단어만 찾으세요.”
찾으세요. 말끝에 강한 힘이 실렸다. 선생님이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아, 네- 대답을 길게 뺀 문성혁이 눈썹을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했다. 탁, 가슴 속 어딘가에서 불이 켜졌다. 불안한 삼각형의 어느 꼭짓점도 아닌 나한테서 불이 켜졌다. 이상했다. 이렇듯 인간은 뭣도 아닌 일로도 역사가 시작될 수 있나보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보면 순서는 이렇다. 처음 문성혁이 눈이 돌아가 사육 상자를 던지기 전에 시비를 걸었던 이는 바로 나였다. 문성혁은 언제나 호시탐탐 나를 건들어 보고 싶어 했다. 아니라면, 뻣뻣한 그의 검사 아버지가 나를 불러 얼굴을 확인하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 삼각형의 한 꼭짓점은 어쩌면 양정희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하,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마디가 부서진 캐터피와 정희의 다친 눈을 보고 아침에 밀려왔던 감정이 왜 슬픔이었는지. 그건 죄책감과 닮아 있었다. 발화가 시작된 점이 성냥 불이었는지, 라이터였는지 그건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내 손끝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 부들거렸으니까.
옆에 앉은 짝이 놀란 눈으로 내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뭐라고 뭐라고 물었다. 눈에 벙긋거리는 입이 보였지만, 내 귀에 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의자가 쿠당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교실 안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안대까지도.
“ 야, 다시 말해 봐.”
문성혁이 느리게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삼각형은 사라지고 녀석과 나 사이에 날카로운 직선이 그어졌다. 수업 중에 교실 한가운데에서 결투 신청을 받은 건 악역도 처음일 것이다. 속으론 당황했겠지만, 무대 위에 빤빤한 얼굴로 올라서는 걸 마다하진 않았다. 곧 죽어도 쎈 척은 하고 싶은 놈이니까.
“ 뭐를? 뭘 다시 말해.”
“ 니 사과해라. 정식으로. 양정희 눈 다치게 한 거 사과하라고.”
드르륵. 문성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수현 선생님이 우리 둘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오직 문성혁만 커다랗게 보였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작고 흐릿했다.
“ 싫은데. 니가 뭔데. 양정희 아빠가. 엄마가. 지랄하지 마라. 병신아.”
병신아.
병신아.
병신아...
딸깍.
정이 누나가 나를 보고 웃는다. 하얗고 방긋한 얼굴이 까만 눈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 뒤에 서서 다른 아이들과 낄낄거리며 우리 누나를 병신이라 부르는 문성혁의 얼굴이 둥둥 떠 있다. 내 걸음은 빨랐고 거침이 없이 한 곳을 향했다. 그건 뇌에서 전달한 행동이 아니라 팔과 다리가 저절로 움직인 동작들이었다.
나는 사육 상자를 벗겨 내고 애벌레가 달랑거리는 화분을 통째로 들어 올려 문성혁의 머리 위로 쏟아 부었다. 어어. 주변에서 놀라고 피하고 소동이 일어났다. 오윤....!!!!!! 찢어지게 내 이름을 부르는 이수현 선생님의 고음도 있었다.
갈색 흙더미와 뒤섞인 캐터피의 배설물, 초록 이파리의 잔재들이 문성혁의 머리와 얼굴, 어깨 위로 흩어졌다. 아까까지 욕과 번들거리던 눈빛을 발사하던 악역은 충격과 당황으로 굳어버렸다. 살짝 벌린 입이 한동안 다물어지지 않았다.
주변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공기 중을 떠도는 모든 소리가 소거되어 신경을 긁는 작은 소음도 사라졌다. 나는 문성혁의 오른쪽 귓바퀴에 불안하게 매달린 통통한 캐터피를 손으로 들어 올려 내 입 속에 넣었다. 그리고 동시에 화분 안에 남은 흙과 찌끄래기는 긁어모아 상대의 입 안으로 쑤셔 넣어주었다. 사이 좋게 우리는 입 안을 채웠다. 쌍꺼풀이 짙은 두 눈이 기겁하듯 질겅거리는 내 입을 보더니, 곧바로 고개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 사과해라. 사과하라고.”
나는 기계처럼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때의 내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마주한 문성혁의 눈에 나는 정신병자 또라이 괴물 그 자체였다.
“ 미...미안 양정희. 내가 잘못했다.”
말을 마친 문성혁은 끝내 으앙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사과에서 찝찌름하고 역한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