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야기
안경알은 날아가면서 정희의 눈가를 찢어 놓았다. 거기다 눈 안까지 상처가 나서 한동안 정희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돌을 닮은 이수현 선생님은 이제껏 본 얼굴 중에 가장 지쳐 보였다. 언제나 바비인형처럼 구불구불했던 머리카락은 고무줄로 질끈 묶여 있었고, 늘 반짝이던 눈 주변도 평범했다.
문성혁이 집어 던진 사육 상자 속 캐터피는 안전했다. 알에서 막 부화한 나머지 작은 애벌레들은 쏟아진 흙더미에 뒤엉켜 쓰레기통 속 안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그래서 다른 반과 달리 3학년 5반 사육 상자 속 애벌레는 캐터피 한 마리만 남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반 애벌레들이 한정적인 먹이를 가지고 눈치싸움을 벌여야 할 때 우리 반 캐터피는 유유자적 여러 잎을 모두 맛볼 수 있었다. 풍파를 겪고 살아남은 승자에게 그만한 기쁨은 온당했다.
교실 문 너머 복도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복도로 나가서 어른들 무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 중 내가 아는 얼굴은 교장 선생님뿐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딱딱한 얼굴로 서 있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어딘가 눈에 익었다. 부리부리한 눈에 네모난 얼굴이 문성혁과 닮아 있었다. 바로 옆에는 짧은 머리칼에 차가운 인상을 가진 여자가 화려한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는 작은 여자아이를 업고 있는 아줌마가 보였다. 여자아이는 정희가 말한 그대로 인형처럼 귀여웠다.
“ 오윤, 잠깐 나와볼까?”
반쯤 열린 앞문 사이로 이수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교실에는 문성혁도, 양정희도 없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빠진 상태에서 호명이 된 나는 뻣뻣하게 일어나 복도 밖으로 나갔다. 교실 속 아이들의 눈이 웅성거림과 함께 쫓아왔다.
“ 니가 오윤이니?”
양복을 입은 각진 얼굴의 남자 대신 그 옆의 차가운 인상을 한 여자가 물었다. 부산 사투리가 들어있지 않은 나긋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네라고 답했다.
“ 하하, 이 학생은 우리 학교 선생님 아들인데. 똑똑합니다.”
거기서 그 말이 왜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나는 교장 선생님 쪽을 바라보았다. 이마 위를 간신히 덮고 있는 몇 가닥의 머리칼이 갑갑하게 보였다. 교장 선생님은 문성혁 아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는 때로는 너무나 노골적이라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아마 띠꺼운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 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을 하고선 크고 부리부리한 눈이 위에서 아래로 나를 한번 훑었다. 얼핏 보아도 그는 자기 아들이 교실에서 한 끔찍한 짓에 대해 조금의 미안함이나 송구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굳이 나를 밖으로 불러 얼굴을 확인한 이유는 뭘까. 이 싸움이 일어난 데에 너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리기 위해서일까? 아기를 업은 채로 뒤편에 서 있는 정희 엄마의 얼굴이 더 어두워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문성혁이 왜 그런 병신이 되었는지, 나는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다치지도 않은 문성혁은 이틀간 결석을 했다. 이틀 뒤, 갈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온 문성혁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들에게 실없는 말을 툭툭 내뱉었다. 평화로운 교실에 운석 덩어리를 떨어뜨린 놈은 조금의 뻘쭘함도 없었다. 수업 시간에는 듣기 싫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 아이들을 귀찮게 하는 게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다른 분단에서도 놈의 노랫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는데 그 옆을 지나가는 이수현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문성혁에게 그 어떤 꾸지람이나 경고도 주지 않았다.
녀석의 어깨는 위로 올라갔다.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학책 한 귀퉁이에 나는 연필로 직직 선을 그었다. 자꾸만 마음속 깊은 곳에 뜨거운 것이 울컥울컥 올라오려 했다. 그러다 문성혁과 눈이 마주쳤다. 실실 웃던 쌍꺼풀 짙은 눈이 가늘어졌지만, 나 또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씨발 새끼야 뭘 꼬라봐.
주름이 가득 진 입술이 허공에서 중얼거렸다. 학폭위로 진행되던 중에 부모들끼리 서로 합의를 보았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치료비 명목으로 큰 단위의 돈이 오갔고, 문성혁의 아버지가 부산 지검의 검사장이라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녀석의 어깨는 더더욱 위로 올라갔다.
일주일이 흘렀다.
여느 날처럼 일찍 등교해서 나는 사육 상자 안에 분무기를 뿌렸다. 어? 그런데 이파리에 달라붙은 캐터피의 움직임이 평소와 달랐다. 나는 손으로 눈을 비볐다. 통통하게 살이 차오른 캐터피가 두 겹, 세 겹으로 보였다. 느리게 꿈틀대는 애벌레 주변의 공기가 교실 벽과 분리된 채로 홀로 진동했다. 그리고 하나씩 마디마디가 떨어져 나가 하나, 둘, 셋.. 조각으로 흩어졌다. 분리된 캐터피의 잔재들은 각자의 의지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식칼로 잘려 나간 장어의 꼬리가 파닥거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바로 지금 눈으로 보는 데도 믿기지 않았다.
캐터피는 홀로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이마에 손을 대보았는데 뜨겁지도, 어지럽지도 않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둘러보았다. 반듯한 책상과 의자, 왼쪽의 선생님 책상과 가운데 보드판. 그대로였다.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애벌레가 번데기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두 겹, 세 겹으로 보이지도, 마디마다 끊어져 따로 움직이는 현상 같은 건 없다. 느리고 굼뜨다가 서서히 멈추고 번데기가 될 뿐이다. 그런데 방금의 캐터피는 달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방금 눈앞에서 일어났고, 나는 그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드르르륵
다시 캐터피를 확인하기도 전에, 교실 문이 열렸다. 왼쪽 눈에 불룩한 안대를 끼고 분홍색 가방을 맨 정희가 서 있었다. “안녕. 윤아.” 명랑하고 활기찬 목소리 그대로였다.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안대줄에 눌린 환한 표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캐터피의 기이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나는 아직 혼란스러웠다. 코끝이 매웠다. 목 끝까지 차오른 감정은. 이상하게도 슬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