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곳은 부산이고, 가족은 엄마 아빠 그리고 한 살 많은 누나가 있었다. 누나의 이름은 오정. 누나는 하얀 보름달 같은 얼굴로 항상 웃었다. 누나만큼 잘 웃진 못하는 나도 누나와 있으면 소리 내어 웃을 정도로 명랑해졌다.
수박씨처럼 검은 누나의 두 눈은 앙증맞았지만, 호기심이 많아 한곳에 오래 머물진 않았다. 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도 내 머리 뒤의 하늘도 번갈아 보느라 까만 눈은 바빴다. 나는 그 두 눈을 사랑했다. 왼쪽 눈 아래 찍힌 다섯 개의 갈색 점도 함께. 동그랗고 작은 귀까지 죽 이어진 다섯 개의 점을 누나와 나는 천국으로 가는 징검다리라 했다.
여덟, 아홉 살짜리가 뭘 안다고 천국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그해 겨울의 일을 우리는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거대한 우주적 힘이 잠시 닿았다 사라진 것일까.
나는 누나를 ‘정이 누나’, 아니면 그냥 ‘누나’라고 불렀다. 엄마는 ‘정아’, 아빠는 ‘오 정’이라 불렀다. 동네 아이들은 ‘쟤’라고 불렀고, 학교에서는 ‘특수’ 그리고 ‘다운’이란 불렀다. 그리고 문성혁이란 아이는 누나를 ‘병신’이라 불렀다.
지가 제일 병신같은 게.
딱딱하고 표정이 거의 없는 아빠를 학교에서도 보는 일은 힘들었다. 6학년 교실로 올라가면 아빠를 볼 수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4층을 올라가지 않았다. 복도를 돌아설 때 혹시나 그 얼굴을 마주칠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들보다는 컴퓨터 모니터 속 복잡한 숫자 나열을 좋아하는 아빠의 반 학생들이 불쌍했다. 아빠는 세상에서 주식을 가장 사랑했다.
“ 네가 오윤이니? 오영훈 선생님 아들. 참 똘똘하게 생겼다.”
“ 어머 얼굴도 하얗고 얌전한 게. 여자애보다 더 예쁘다. 얘.”
때때로 복도에서 마주친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고 갔다. 그럴 때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손길 뒤로 꼬리처럼 뒷따르는 말들이 있었다.
쟤가 그 영재라며.
엄청 똑똑하다던데. 아이큐가 얼마? 정말. 오영훈 샘 자랑할 만하네.
그래도 둘째는 괜찮아 다행이네.
내가 괜찮다는 게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첫째의 장애를 둘째의 똘똘함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우리 누나가 뭐 어때서.
나는 마음속으로 소심하게 씩씩거렸다.
그 선생님들이 말한 것처럼 아빠는 내가 또래보다 구구단을 먼저 외우고, 블록을 여러 모양으로 바꾸고, 알 수 없는 그림과 기호들이 쌓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걸 좋아했다. 그럴 때는 안경 뒤에 가려진 납작한 눈이 웃고 있었다.
주말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센터 사무실로 들어가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클릭하거나 여러 문제집을 풀었다. 잠시 후에 아빠는 가운을 입은 사람과 푹신한 의자에 앉아 느긋한 얼굴로 어른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아빠의 모습은 배부른 고양이와 닮아 있었다. 내가 그 사무실에서 가장 좋아한 건 문제를 풀고 나서 주는 분홍색 코끼리 모양의 사탕뿐이었다.
“ 선생님, 코끼리 사탕 하나 더 받을 수 있나요?”
“ 오 그럼 그럼. 윤이가 이 사탕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 누나도 주게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운을 입은 선생님은 대인관계 지능 칸에도 체크를 더했다.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을 풀고 나면 사탕이라는 달콤한 보상이 돌아왔다. 누나를 귀찮아하는 아빠의 반응과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바보라고 생각했다.
겨울이 왔다.
1주일 뒤가 크리스마스였다. 거리 곳곳에 번쩍이는 장식들이 붙어 있었고, 누나와 나는 엄마와 같이 거실 구석에 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다. 나는 빨강과 흰색이 섞인 지팡이 오너먼트를 걸었고, 누나는 갈색 루돌프 인형 고리를 트리 끝에 걸었다.
유리창 밖은 푸르스름했고, 집 안에는 엄마가 오븐에 넣어둔 고구마의 달콤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완벽했다. 나의 유년 시절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바로 이 순간이다.
우리는 1주일 뒤에 받게 될 산타 할아버지 선물에 대한 퀴즈를 주고받았다. 누나는 웃기만 했고, 나는 인형은 안되고 진짜 고양이만 된다고 했다. 옆에서 엄마는 알쏭달쏭한 표정만 지었다. 고양이를 사 주지 않을 것 같은 표정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 엄마를 쳐다보며 볼멘 소리를 했던 거 같다.
그러자 누나의 보드랍고 작은 손이 내 머리 정수리를 살짝 눌렀다 뗐다. 괜찮아.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고양이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지, 아니면 고양이 선물을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조급한 마음이 이내 풀렸다. 나도 누나의 단발머리 위로 손바닥을 잠시 눌렀다 뗐다. 괜찮다고 전했다. 그건 우리만의 인사였다. 아빠 때문에 속상하거나 누나의 실수로 집안의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 버리거나 아빠와 엄마가 큰 소리로 싸울 때나. 우리는 작은 방 안에서 서로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기다린 크리스마스가 왔지만, 우리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검은색 옷을 입고 울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무 바닥에 앉아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대신에 하얀 꽃들 사이에 놓인 누나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달콤한 고구마 냄새 대신에 풍기는 향냄새가 매캐했다. 누나와 아빠가 타고 있던 차는 7톤 덤프트럭을 피하려다 중앙분리대를 그대로 들이받았다고 했다. 아빠는 다리를 심하게 다쳤고, 누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숨을 거두다... 그게 무슨 말이나면 다시는 누나를 볼 수 없는 거라고 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죽은 거라 했다. 세상에서 사라져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