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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광년 Sep 13. 2024

35. 나만 보고 싶어요. 당신 전부 다.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이 실장이 운전하는 차를 탄 복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다.     


 이 실장님어디로 가는 건데요뭔가 기분이 이상한데요.”     

 하하뭐가 이상하세요청담동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곧 도착합니다.”     


룸미러로 이 실장의 작은 눈이 한껏 휘어지는 것이 보였다. 100킬로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몸을 안정감 있게 사피아노 가죽이 감싸고 있다차 안 천장은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의 초극세 섬유로 발라져 있고양 사방에서는 은은한 흰색 빛의 내장 조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차 안 내부를 둘러보며 복자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떨어진 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설레면서도 묘하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차는 박스형 건물 앞에서 섰다주차 요원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고복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매장 입구에 있던 검은색 슈트를 입은 단정한 머리를 한 남자가 다가와 이 실장을 보고 가볍게 인사를 한 후복자에게 말을 건넸다.     


 “ 안녕하십니까안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머리스타일 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말투와 행동을 보였다한 손으로 가볍게 건물 안쪽을 가리켰다복자는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단조롭고 절제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화려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다끝없이 펼쳐진 대리석 바닥 한 가운데 자유로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러개의 마네킹들이 저마다 독특한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그 뒤로 지방시알랙산더 맥퀸셀린느마르니포로엔자슐러생로랑 등등의 핸드백들이 섹션별로 줄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갈라진 여러 갈래의 섹션들마다 기하학적으로 설치된 조명과 유리거울 사이로 계절과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소재의 고급 브랜드 의류들이 비쳤다복도와 복도를 잇는 섹션 입구마다 정돈된 검정색 슈트를 입은 직원들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지 채 3분도 되지 않아머리가 약간 어질해질 정도의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서울 하늘 아래에정말 별천지네.’      


라고 복자는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자꾸 움츠려지고불편했다입구에서 복자를 안내한 중후한 목소리의 직원이 뒤에서 말을 걸어온다   

  

 손님여기는 N관입니다. 2층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녀는 직원의 안내를 따라 2층으로 연결되는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1층과 달리 2층은 파리의 고급 아파트를 연출한 듯한 모습으로큼직큼직한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새하얀 조명 빛이 수십 켤레의 슈즈들을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섹션을 지나꽤 높고 커다란 문 앞으로 직원은 복자를 안내했다이 실장은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문 옆에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직원이 가운데 금색 문고리를 쥐고 문을 밀자보라색 양탄자와 회색 돌벽으로 둘러싸인 실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그 한가운데 번쩍거리는 골드빛의 머리칼을 하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펑퍼짐한 검은색 옷을 입고 입은 살집이 두터운 중년의 사내가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어머자기가 그분이구나반가워요나는 욥스라고 해요.”     


얼어있는 복자를 욥스는 다정하고 가볍게 포옹해주었다복자의 양 볼에 통통한 그의 볼살을 번갈아 스치면서 입으로 ,” 소리를 내며 유럽식 인사까지 빼먹지 않았다그는 말을 할 때마다손가락을 여러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뭔가가 반짝거리는 노란 것이 보였다나중에 보니그것은 그의 손톱에 네일 아트 한 노란색 미니언즈들이었다   

  

 “ ,안녕하세요근데 제가 여길 왜...”     


이젠정말 물어보아야겠다고 복자는 생각했다여기이곳에자신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말이다그러자 욥스는 조금 놀란 얼굴로 두툼한 손가락을 오므려 입을 가리며 외쳤다     


 “ 어머어머어머!! 자긴 몰랐구나어머이 실장님그죠이거 서프라이즈죠어머어머~~멋져멋져민 전무님너무 멋지다푹 빠졌네푹 빠졌어영 점잖은 선비님인 줄 알았는데 이런 면이...”     


속사포같이 하이톤으로 쏟아내는 그의 말들은 처음 듣는 사람이 단번에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욥스는 눈앞에 앉아 있는 복자와 이 실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구르며 한동안 호들갑을 떨었다     


 “ 아 하...저기...”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띠며 복자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하자그는 조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의자에 앉아 복자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 아 자기미안 미안내가 좀 오바스럽지.  어쨌든 나만 믿어요오늘 저녁에 갈 파티를 위해서 자기를 좀 더 돋보이게 해 달라는 명령을 받았으니깐.”    

 

 “ ???”     




    

(서울 근교의 칼튼 리조트 행사장 안)     


 ..”     


목소리가 잠겼는지 우성은 자신의 목 상태를 점검한다평소엔 여유가 넘치는 그인데도 오늘은 조금 긴장되어 보인다회색 프라다 더블브레스트 슈트를 입은 그의 어깨가 조금 굳어 보였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민재의 눈빛이 한없이 만족스러워 보인다오늘은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날이었다내 아들이 차기의 이성 그룹의 주인이 될 거라는 걸 만 천하에 공포하는 날이날을 위해서 그녀가 얼마나 수많은 장애물을 무너뜨리고 갖은 모욕을 참아왔는지...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아버지마저도 딸인 민재를 이해하진 못할 테니깐     


 민 전무괜찮아?”     

 어머니지금 도착하신 거예요..”     

 아버지랑 같이회장님도 와 계신다룸에 계셔.”     

 할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시데어쨌든 오늘 우리 민 전무한테는 중요한 날이니깐 다른 건 신경 쓰지 마라그지회장님이 공개적으로 우리 민 전무를 소개하는 날이니깐.”

 

 민재는 하얀 공단으로 둘러싸인 시스루 블라우스 위의 여러 개의 진주 목걸이를 매만지며 준비가 거의 끝난 장내 안을 둘러보았다무대조명객석의 위치주변의 장식과 움직이는 직원들... 어느 하나 실수가 없어야 한다오늘은 모든 게 완벽해야 하는 날이니깐.     


 “ 어머니?”     

 “ 뭐 수정해야 할 부분이라도 있니?”     

 “ .. 오늘 제가 어머니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가족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우성의 말에민재의 눈빛이 묘하게 날카로워졌지만 곧 누그러졌다그녀는 우성을 아주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 소개하고 싶은 사람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이니너에게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구나물론친구는 아닐 테고여자?”     

 “ 제가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유 있게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민재는 진중한 얼굴을 한 우성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 하지만민 전무오늘 재림이 부모님 두 분 다 여기 초대되어 오시는 것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나도 그 아가씨가 궁금하니깐편견 없이 보도록 할게그럼 나는 회장님 좀 뵈러 가야겠다수고.”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식장을 빠져나온 민재우성과 조금 떨어진 거리까지 오자 뒤에 따라오던 수행 비서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린다그 목소리가 매우 차갑다.     


 지금 바로 이 실장 연결시키고우성이 이름으로 나간 초대장 명단 손님 중에 여자 이름 추려서 가지고 와.”     



     

 어머니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문득 떠오른 것이 있는지 우성은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건다아까와는 달리 그의 표정에 생기가 돈다.  

   

 이 실장어디쯤이야?”     

허허전무님지금 리조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A동 3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지금 가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우성은 빠른 걸음으로 식장을 빠져나와 오픈 톱 라페라리에 올라탔다주변에 뒤따라 나온 몇몇의 수행원들에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우성은 엑셀을 힘주어 밟았다지금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만 있을 뿐 이었다.       

 

 후우-”     


A동 3호 문 앞에 서있는 우성그는 크게 숨을 내쉬고 자신의 왼쪽 가슴에 한 손을 올려두었다손바닥으로 둥둥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그대로 느껴졌다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고백이자 확신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우성이 들어서자맞은 편 테라스 쪽에서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감탄하는 복자의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따뜻한 기운으로 불타고 있는 벽난로를 지나 테라스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옆모습이 있었다맞은편에 보이는 겨울 산의 하얀 눈빛이 그녀의 얼굴 위로 파리하게 비쳐 복자의 피부가 투명하게 보였다동그랗게 말아 올린 머리 스타일 때문에 그녀의 갸름한 얼굴과 아래로 떨어지는 목선이 여릿하게 보였다그리고 그녀의 몸 전체를 부드럽게 조이며 감싼 라임색의 레이스 드레스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그녀가 서 있는 것만으로방안의 공기가 5월의 봄날처럼 따뜻해졌다  

   

우성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감탄했다.     


 “ ... 복자씨.”     


그제야인기척을 느낀 복자가 고개를 돌려 우성을 발견하고 반갑게 활짝 웃었다두 눈의 반짝거림활짝 꽃 피듯 펼쳐진 미소그녀는 몰랐겠지만그 모든 게 우성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시간은 그곳에서 정지했고복자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성의 뇌리속에 선명하게 박혔다  

   

 우성씨리허설 중이라고 들었는데.”     


복자는 생각지 못한 우성의 등장에 약간 놀랐지만한편으론 낯선 곳에서 만난 그가 너무 반가웠다불안한 그녀의 마음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그러나 평소와 다른 장소다른 모습의 자신이 어색하고 불편한 건 여전했다    

 

 어색하죠이런 건 처음 입어 봐서뭐랄까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그래도 저 피오나 공주 같진 않...”    

 

복자 쪽으로 성큼 다가간 우성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손을 뻗어 그녀를 포근하게 안았다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그는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목에서 어깨로 떨어지는 곡선에 살며시 그의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갑작스런 우성의 포옹에 복자는 놀라 두 팔을 뻣뻣하게 아래로 내린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가슴 위로 느껴지는 두근거림이 자신의 것인지아니면 우성의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만 보고 싶어요당신 전부 다.”     


몽롱해지는 분위기를 뚫고우성이 속삭이듯 말했다그의 손이 복자의 등 위를 연주하듯 쓰다듬은 후사랑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자신을 올려다보는 이 까맣고 동그란 두 눈을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으라고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았다우성은 작게 탄식과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민망해진 복자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지는 못하고대신 애먼 네이비 셔츠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우성은 한 손으로 적당히 붉어진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스친 후복자의 이마 위로 솜털같이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그때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무게감 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이 실장이었다뭔가 묘하게 훈훈해진 주변의 핑크빛 기류를 느꼈는지거구의 사내가 겸연쩍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 죄송합니다만전무님이제 곧 파티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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