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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예담 Sep 22. 2021

찌질한 이별 극복법

이 글은 <두 번의 이별, 재회는 소용없었다>를 보고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이별하고 3주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첫 2주는 확실히 침울했다. 매일매일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우울한 감정이 올라오면 벗어나기 어려웠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하루를 잘 사는 게 아니라 억지로 끌고 갔다. 하루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잠드는 시간이었을 정도로.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고 우울감이 지나쳐서 정신과 병원을 고려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면 내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아닌 걸 알면서도 나 자신이 한심할 것 같았다.


다행히 3주 차부터는 어딘가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독립도 하고, 일, 인생, 취미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아서인지 뭐든 열심히 했고 지칠 때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휴무 전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결국 터졌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봤을 뿐인데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집에 올 때마다 느끼는 쓸쓸함, 조용하고 어두운 집, 혼자 먹는 단출한 밥, 그게 싫어서 식당에서 혼자 먹는 저녁밥, 나의 힘들고 슬픈 감정을 소박하게라도 말할 수 있던 사람이 없어져서 다 서러웠다.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게 짜증 났다. 아직도 못 지운 사진들을 또 보다가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들어가 봤다. 그 어딜 가도 내 흔적은 하나도 없더라.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찌질하게도 결국 연락을 했다. 그것도 제일 최악인 술 먹고 전 애인에게 연락하는 그런 짓을.


감정을 쏟아냈다. 정말 힘들다고. 참고 참다가 이제야 터졌다고. 내가 끝내자고 해놓고 이렇게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너 전시회 잘 봤다고. 잘 지내라고. 


그럼에도 그 사람은 침착하게 답장해줬다. 정말 이별이었다.


4주 차


다음 날 아침, 3주 만에 알람 없이 늦잠을 잤다.

그리고 밀려오는 당연한 후회. 어떻게 그런 최악의 행동을 했을까. 잘 버텨오다가 그렇게 망쳐버린 나를 참을 수 없었다.


퍽퍽하고 맛없는 밥과 닭가슴살을 욱여넣고 근처 헬스장에 갔다. 1년권을 끊고 운동을 2시간 정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짐만 내려놓고 바로 백화점으로 갔다. 3시간 정도 쇼핑을 한 것 같은데, 내 기준에 돈을 정말 많이 썼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치킨을 먹으며 하루를 끝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잘 지냈다. 문득 그 사람이 떠오를 때가 있었지만, 사실 많았지만, 잘 넘겨왔다.


아침에 헬스를 하고 저녁에도 산책이나 러닝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더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개인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그 사람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많은 걸 하게 됐다. 


근데 웃긴 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공간을 찾아간다. 같이 갔던 카페, 동네, 마트,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간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 가는 건지, 이별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깨달으려고 가는 건지 모르겠다. 머리는 이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쉽지 않다 정말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열심히 살다 보면, 희미해져 갈 것을 안다. 잊지는 못하겠지만 점점 옅어질 것을 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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