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슬럼프>속 남하늘에 대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제 아무리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더라도, 결과물이 언제나 좋지도 않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여태껏 쌓아온 모든 것을 잃는 일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에 우리의 삶이 너무도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렇게 미약하고 불확실한 기반 위에 만들어진 삶에는 대체 어떤 가치가 있을까?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삶에서 만나게 된 슬럼프
드라마 <닥터 슬럼프>는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를 상징하는 직업인 두 ‘의사’가 슬럼프 시기에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뛰어난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상사를 만나 번아웃을 맞이한 대학병원 전문의 남하늘. 부도 명예도 모두 갖춘 성공한 성형외과 의사였으나, 이해할 수 없는 한 건의 의료사고로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30억의 빚만 남겨버린 여정우. 서로의 존재도 모른 채로 치열하게 살아가던 두 사람이, 슬럼프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시기에 다시 만나는데, 두 사람의 상처는 생각 이상으로 깊을 것으로 보인다. ‘슬럼프’에 빠진 상황속에서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정우는 하늘 앞에서 내색하진 않지만, 대인관계도 망가졌고, 세상 사람들의 의심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아내고 있는 중이다. 여태껏 쌓아온 부도, 지금까지의 명예도, 좋은 시기엔 좋은 친구였던 이들도 모두 잃어버린 그의 마음은 분명 하늘만큼이나 복잡하고 절망적일 것이다. 한편, 타고난 공부머리와 함께 공부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던 부산 출신의 의사 남하늘. 하늘은 모의고사 전국 1등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쥔 천재 소녀였었다. 공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고,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누구보다 독하게 달려왔고, 거의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았던 하늘은 그토록 바랐던 의사가 됐다. 일단 서울로 올라가서 의사가 되고 나면 모든 게 탄탄대로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늘은 대학 병원의 훌륭한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부당한 요구와 온갖 불합리한 업무 지시와 과로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우울증에 걸리는 지경에 이른다.
관계로 받은 상처를 관계로 치유할 수 있고, 성과에 대한 압박감으로 받은 상처는 휴식으로 치유할 수 있다.
유망한 두 의사인 정우와 하늘은 모두 각자의 슬럼프에 빠져 의사라는 일을 쉬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휴식기에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두 사람의 상처를 어떤 도구로 봉합할까? 전 회차가 공개되지 않은 지금, 섣불리 답을 내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추측컨대 부모님에게까지도 깊은 신뢰와 사랑을 받지 못했고, 가장 힘든 순간에 떠나버린 친구들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았을 여정우는 하늘의 적극적인 지지와 신뢰를 통해서 상처를 회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 하늘이 정우에게 보내는 그 적극적인 지지와 신뢰는 훗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하늘의 경우는 완전한 탈진 상태이며, 동시에 지속적으로 주변의 기대감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고, 자신 스스로도 성과 주체로서 압박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열심히 달려온만큼 잠깐의 휴식기가 필요할 법도 한데, 하늘은 휴식중에도 불안감을 느낀다. 자신이 같은 의사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어 신경쓰인다는 말, 의사로 일하는 친구를 보며 여전히 부러움을 느꼈다는 그녀의 말로 그녀가 받고 있는 압박감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쉬지않고 달려왔음에도 계속해서 달려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는 하늘의 심리적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 심리적 부담감과 압박감이 그녀를 우울증으로 몰았을 것이다. 내 경우엔, 정우의 경우보다는 하늘의 경우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많은 현대인들이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성과에 대한 압박감을 갖고 살아간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그런 압박감이 더 하고, 이를 잘 보여준 인물이 바로 하늘이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함정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진지한 사람들은 영화 보러 가는 습관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하며 그런 버릇은 젊은이들을 범죄로 이끈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영화를 만드는 노동은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이기 때문에, 또한 돈을 벌게 해주기 때문에.”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모든 일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성과가 있어야 하고, 능률이 있어야 한다. 목적과 성과 능률이 없는 일은 그 자체로 무시되고, 비난받는다. 이런 비난의 기저에는 개인을 그저 이윤 창출의 주체 또는 성과주체로 보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시선이 숨겨져 있는데, 우리는 자본주의의 이런 시선을 쉽게 긍정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만큼, 어쩔 수 없이 그 룰을 따라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 철학의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보면, 그것은 결국 이윤 창출을 통한 소비를 권장할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 그 자체보다는 자본과 물질의 흐름이 막히지 않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 흐름이 막히지 않을 때 인류 전체의 부가 증가하고 증가한 부만큼 인간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즉,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삶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수세기 전 애덤 스미스와 함께 등장한 자본론이 과학기술의 진보와 함께 제국주의의 폭압적인 강탈과정과 맞물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인류 전체의 부가 자본주의가 가져온 부의 결과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으며, 이 이론은 우리의 이기심을 두둔하고 자극하기에 쉽게 옹호받고 권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이 결국 우리 자신의 착취하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대한민국은 특히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거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룩한 고도의 경제성장이라는 배경이 있다. 우리 근현대사는 말그대로 가진 게 없고 배우지 못한 이들을 갈아 넣는 적자생존의 시대를 거쳐왔다. 기적을 일으킨 한강은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으나, 아무도 그 한강의 색이 붉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의 희생을 애써 외면하기에, 계속해서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서 사회적 성공만을 권장하게 된다.
그래서 서점의 가판대에는 항상 재테크에 대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영화관에는 상업 영화만이 걸려있고, 대다수의 개인은 성과주체로서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며, 기업가들은 부를 늘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모두가 이윤창출로 열을 올리고 있으니, 버티지 못한 이들이 먼저 슬럼프에 빠지고, 고장나기 마련이다. 마치, ‘인간 남하늘’이 인간으로서, 그저 생명으로서 완전히 고장나버린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을 끝없이 고장나게 만들어버린다. 회사라는 전체를 위해서 급한 업무가 있다면, 개인은 주 60시간이 넘도록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낡은 전체주의적인 사고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병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좀처럼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고, 평범한 대다수의 시민은 그렇게 천천히 고장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무언의 폭력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고장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은 무너졌고, 나는 꽤 거창한 위로를 받길 원했다. 하지만, 떡볶이가, 오락실이, 쓰러진 채 있으라는 말도 안 되는 위로가 오늘 밤은 나를 편히 잠들게 해줄 것 같다.”
그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인간을 굴복시키는 불합리에 의식적으로 반대하던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스스로를 지킬 방법,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성과주체의 삶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던가 말이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사회를 바꾸기보다는 개인들이 먼저 천천히 성과주체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성과주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대략 열거해보자면, 이렇지 않을까?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기. 아무 생각 없이 걷기.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이 삶을 살아가기. 그리고, 쓰러졌다면, 그저 아무런 목적 없이 그대로 좀 쓰러져 있어 보기. 그렇게 생각없이 쓰러진 김에 쓰러져 있고, 때때로 목적 없이 보내버린 시간들이 쌓이게 되면, 훗날 다시 당신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당신에게 힘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힘은, 수없는 저항에 의해서 느려질대로 느려져서 그저 지긋지긋해진 관성의 힘이 아니다. 쓰러져 있다가 다시 달려가기 위해서 일어 났을 때, 당신이 쓰러져 있던 시간들이, 당신의 체력과 근력을 회복시켜줄 것이다. 이렇게 쓰러져있는 동안 회복된 힘은 다시 한번 레일을 박차고 나가기에 충분한 추진력을 줄 것이다.
-<닥터 슬럼프>, 2024,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