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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Mar 09. 2020

세계 여성의 날

0308. 뮌헨에서

세계 여성의 날이다. 거리에는 이날을 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뮌헨 중심부를 도는 행진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행진에 참여한 사람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젊고 건장한 남성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함께한다는 것이 꽤나 놀라웠다.


인상 깊었던 몇몇의 문구.


"UNTIL ALL ARE FREE, NO ONE IS FREE"


"CAREWORK IS A PAID WORK"


"I HATE CAREWORK"


아이 돌봄이나 집안일은 통상 여자가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들어 많이 바뀌긴 했어도 실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지는 미지수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집안에서의 위치는 출산율이 얘기해준다. 우리나라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2019년 기준 0.92명이다. 사상 최저의 기록이다. 그런데도 기록만 내고 수치에 연연하면서 여성을 위한 정책 하나 만들지 않는 나라가 통탄스럽다.


참고로 독일은 아이를 낳는만큼 세금 감면이 이뤄진다.


최근 'N번방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끔찍한 사이버 성착취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국민 청원을 통해서야 법안으로 발의되었다.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가 여성에게도 적용되고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지위를 꿈꾼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성평등을 생각하는 것.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외친다는 것.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여성과 관련한 모든 행진은 마스크를 쓰고 진행된다.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서, 주변 어른들의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 때문에, 자극적인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유투버들을 피하기 위해.


반면에 내가 뮌헨 중심부에서 경험한 행진은 오히려 축제 같았다. 밴드가 앞장서면 시민들이 뒤따르는 모습은 마치 신나는 축제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이 펼쳐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할까? 마스크 없이 웃고 떠들며 플랜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은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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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내가 있는 기숙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나랑 친구랑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것 같아. 어떤 남자들이 우리를 계속 따라오고 있고, 지하철 노선을 바꿨는데도 우리 목적지가 어디인지 들은것 같아서 무서워. 우리가 기숙사 지하철 역에 도착할 때 쯤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줬으면 좋겠어.'


결국 나는 친구와의 약속에 나가지 못했고,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달린 이 글은 다음날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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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잣대. 정치든 예술이든 어떤 분야든 심지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여성에게는 더 강한 잣대가 부여된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이 정치로 이용되어도 뭐 어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파이가 더 커질 수 있다면.


나는 동양인 여성이다. 내가 먼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든지 특별히 더 친절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강박인지 사회로부터 습득한 강박인지 헷갈린다. 둘 중에 무엇이든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가끔은 이런 것들은 인지해야 하는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를 조금씩 되찾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은 한 번 배운 건 쉽게 잊지 않는다.


내가 미니스커트를 입는게 '그냥 내가 입고 싶어서' 입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너가 보라고 입는게 아닌' 날이 올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언제나 말하고 싶은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공감할 것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한 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 합당한 대우를 받는것. 여성이라는 이유로 세상에서 지워지는 이름이 없도록 하는것.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세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이 지금 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미래의 여성들을 위해! 더욱 큰 목소리를 내야한다. 세계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가 증오의 대상이 아닌 날이 올 수 있도록! 내가 어딜가든 나의 뿌리를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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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를 잃고 있었다. 조심스럽고 친절하고 질투 많고 이미지가 중요한 '여자'로.


그리고 뮌헨에서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잠깐 놓치고 있었다. 해야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지만 이제부터 찬찬히 하도록. 내가 잠깐 잊고 있던 행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다섯달 간의 뮌헨,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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