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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나무 Aug 22. 2024

2-3 환자만큼 힘든 배우자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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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듯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아파치족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

책장에 꽂혀있던, 류시화 작가의 책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들춰보다 눈에 띈 글입니다. 특히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는 시구가 예전과는 달리 읽혔어요.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파장은 아내에게 직격탄이 된다고 걱정을 하고 있는 시기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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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던 어느 날이었어요.

이 때는 매일매일이 너무 피곤하고 몸도 무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도 신문도 눈에 잘 안 들어와서, 넋 놓고 TV 리모컨으로 방송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곤 했어요.


그러다 어느 처음 보는 드라마에 눈이 갔어요. 화면에선 배우 한석규가 무심히 야채를 다듬어 가며,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요, 오디오에선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요리 레시피가 흘러나왔어요. 

"아귀찜 조리 비법은 다음과 같다. 아귀는 삶아서 냉장고에 식혔다가 사용하면 살이 랍스터만큼 맛있다는 것, 콩나물은 미리 데쳐두었다가 그냥 버무려 낸다는 느낌으로 할 것, 육수는 자작하게 붓고 다른 해물을 섞어 넣어도 좋다..... "


처음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있다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스타일의 '먹방'인 줄 알았어요. 주인공 고로가 업무 차 방문한 동네 식당에서 '혼밥'을 하며 음식에 대해 품평하는 드라마 말이죠.


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금방 알아챘어요.

'아, 이거 그냥 요리 드라마가 아닌 것 같은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고, 동명의 원작 에세이를 드라마로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원작은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제목의 책으로, 부제는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였어요.

바로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어보며 알게 되었어요.

암 투병 중인 아내는 어떤 음식도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지만, 남편이 해 준 음식만 조금씩 먹을 수 있어요. 요리라곤 라면 밖에 못하던 남편이 아내를 위해 시금치나물, 잡채, 볶음밥에 이어, 아내의 추억 속 돔베국수, 어머님이 해주셨던 떡국, 갑자기 먹고 싶다는 해삼탕까지 점차 수준을 높여가며 해내요.

인문학자이자 글쓰기 강사인 남편은 이 과정을 매일매일 SNS에 올렸고, 나중에 묶어서 책으로 만들었어요. 아내를 간호하고 낯선 부엌일을 하는 틈틈이 작성한, 60 여 가지 요리의 레시피가 이 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요, 나머지는 각 요리와 연관된 짧은 에피소드들이 덧붙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어요.

눈에 보이는 건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요리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읽히는 건 요리하는 남편의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출판사 대표이자 환자인 아내와 작가이자 보호자인 남편의 - 사십 년간 함께했던 시간과의 이별 과정이기도 했어요.


담백하게 적혀 있는 문장이었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감정을 흔들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어요.


'굴비 하세요' 편에서는 굴비 손질법과 요리법을 한 참 얘기한 후에 덧붙여요.

“맛있네. 굴비 먹고 굴비하자!”

(아내가) 눈을 크게 하고 고개를 든다. 무슨 뜻?    

“굴비(屈非)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야. 굴비가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가 봐. 굴비에는 좋은 단백질과 비타민 A와 D가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소화도 잘 된대. 몸이 약한 사람에게 무척 좋다니까.” 

(아내가) 가시를 발라내며 잘 먹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운 설날 떡국' 편에서는,

'대파를 썰기 시작했다. 아내가 부엌으로 와서 같이 썰었다. (중략) 내가 써는 속도와 아내가 써는 속도가 비슷하다. 내 솜씨가 는 걸까? 아니면 아내가 힘이 부쳐서 그런 걸까?'


사실, 저는 끝까지 보지 못했어요. 드라마는 절반 조금 넘게, 책은 절반 정도에서 멈추었죠. 더는 볼 자신이 없어서요. 처음엔 아내가 그릇을 비우면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저는 박수를 보냈죠.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제 감정이요. 


저의 상황이 일반 독자의 상황과 달라서 그랬겠죠. 마치 거울 앞에서 제 모습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암 환자인 아내에게 공감하는 만큼 제 가슴이 미어졌고요. 아내의 아픔을 지켜보는 남편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만큼 제 마음이 동요했어요. 아내를 보면 애처로웠고, 남편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회차가 넘어갈수록, 예측되는 뒷얘기에 두려움이 커졌어요. 이제는 예전처럼 단순한 문학적 감동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멈춰야만 했어요. 나쁜 생각이 커지기 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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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암을 다룬 영상을 보던 중, 어느 환자의 남편 분이 적은 댓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내가) 항암 치료 1년째인데 그 고통의 깊이를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날입니다. (중략) 한 달에 한 번 6일을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 주기가 3개월로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중략) 그 주사약이 얼마나 독한지 탈모에 발 저림 손 저림에 또 입맛은 귀신같이 앗아가는지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다만 격려하고 그 길을 같이 걸어갈 뿐입니다.'



하나의 인생에 함께 올라타 있는 것이 부부입니다.

환자만 힘든 게 아님을 또 한 번 생각합니다.








�  80억 명이 살아가는 이 지구에서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인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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