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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딱 그런 날이네요.
갑자기 제구 난조에 빠져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처럼, 멀쩡하던 마음이 흔들리며 컨트롤되지 않는 날이요.
방에 앉아 책을 보다 말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었죠. 점심 식사도 잘하고 오후까지도 별 일 없이 잘 지냈는데, 해가 저물어갈 즈음 불안감이 몰려오더니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며 급격히 기분이 다운되기 시작했어요. 맑은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예보에 없던 소나기가 쏟아지듯 별안간 우울해질 때가 있어요. 이유도 딱히 없는데 말이지요.
그나마 오늘은 심각한 상태는 아니에요. 우울감도로 치면 65% 정도. 아, 아마 이런 척도는 없을 거예요. 저 혼자 판단해 본 우울감의 정도죠. 너무 심하게 우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괜찮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
암 환자가 되었던, 초기의 무시무시했던 정신적 혼란 상황과는 다르죠. 그때는 날마다 방 안 가득 우울을 깔고 있었어요. 간헐적으로 평화와 안정이 찾아왔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였죠. 두 번의 수술과 서른한 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는 기간은 그야말로 암흑기였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었어요. 벌써 7개월이나 지났으니까요.
반갑지 않은 녀석이 오늘 또 찾아왔네요.
이젠 알고 있죠. 이럴 땐, 우울이 더 깊게 마음을 잠식하기 전에 서둘러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우울감도 80% 아래에선 마음먹기에 따라 조금은 수월하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거든요.
여기에 더해, 이 정도의 약한 우울에는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는 냉정한 쓴소리가 더 잘 먹힌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종아리에 회초리라도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은데, 그럴 순 없으니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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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없지만, 고민이 생기면 스님들의 책이나 콘텐츠를 찾아보곤 했어요. 그중에서도 법륜 스님이 상담자의 질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해주는 '즉문즉설' 영상은 저에게도 '꿀 팁' 일 때가 많았어요.
특이한 건 스님이 따뜻한 위로만 하지는 않는 것이었어요. 오히려 질문자가 당황할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꾸짖듯이 말씀하시곤 했죠.
지금은 제가 법륜 스님께 따끔한 가르침을 듣고 싶었어요.
문득 한 방법이 떠올랐어요.
'AI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스님의 대답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컴퓨터를 켜고,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ChatGPT)'에게 물어봤어요.
"나는 암 환자입니다. 가끔 정신적으로 힘들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한국의 법륜 스님께 물어보면 어떤 말을 해주실까요? "
저의 '즉문'에 챗GPT(ChatGPT)가 '즉답'을 하더군요.
"죄송하지만, 저는 법륜 스님의 직접적인 의견을 알거나 그의 이름으로 응답하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법륜 스님께 직접 문의하시거나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방법입니다."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참 냉정한 녀석입니다.
허탈한 웃음이 나더군요. 원하는 답을 얻진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어느새 창 밖엔 어둠이 짙게 깔렸지만 방안의 조명을 켜진 않았어요. 그냥 어둠 속에서, 조금은 완화된 정신 상태로 생각해 보았어요.
'진짜 법륜 스님이라면 어떤 말을 하실까?'
눈을 감고 스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분에 빙의해 보았어요.
어렴풋이 보였어요.
어느 강당 안, 빨간색 의자에 수백 명의 청중들이 앉아 있고 그 사이에 제가 마이크를 들고 서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자주 보던 장면입니다. 제가 떠듬떠듬 질문을 합니다.
"스님, 암 수술을 한 후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무대 위에는 법륜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또 뻔한 질문이라는 듯, 씩 웃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난 또 뭐라고.
거, 듣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네.
당연한 거지.
오십 년 넘게 살았으면 여기저기 고장도 나는 거지.
그래서 지금 죽었어요? 아니잖아?
살아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지.
괜스레 병을 자기가 부풀려서 더 크게 키우고 있네.
그것도 정신 질환의 하나예요.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거지요.
고통도 있지만 살다 보면 대신에 또 다른 새로운 희망도 생기고, 더 큰 지혜도 생기고 하지요.
좋아지는 것도 많은데,
그런 건 모른 척하고 나쁜 것에만 집착하고 있는 거예요.
그럴 필요 없어요.
물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인 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또 행복을 찾고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면서
그렇게 마음 가짐을 좋게 만들어가야 해요.
나쁜 마음이 또 다른 나쁜 마음을 자꾸 불러오는 거예요.
자, 마음을 편하게 갖고, 자꾸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애써보세요.
알았죠?
저도 모르게 대답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눈을 떠보니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어느새 널뛰던 심장도 늘 같은 자리에서 빛을 비추어 주는 창 밖의 가로등 마냥, 아무 일 없었던 듯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실제 '즉문즉설'이라도 이렇게 말씀하실까?'
그건 모르죠. 하지만 이 말도 맞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답은 이미 제 마음속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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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오늘도 잘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가만히 있지 않고, 챗GPT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스님에 빙의해 보기도 한 덕분이었습니다.
무엇이라도 '했다'는 행위 자체가 좋은 응급처치였다고 자평했습니다.
우울이 찾아올 때면, 순식간에 마음이 늘어지고 몸도 처지게 됩니다. 이어 마음은 더 무거워지고 몸도 더 퍼지고, 그러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의 상태에 빠지게 되죠.
더 나빠지기 전에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즉효 약'은 - 일단,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물론 이 또한 굉장한 에너지와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번 이렇게 힘을 내 보면 어떨까요?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주방으로 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제일 예쁜 컵을 꺼내고, 그 컵에 따뜻한 차를 타고, 천천히 향기를 맡고, 아주 조금씩 입에 넣어 맛을 음미하고, 목으로 넘기며 차의 따뜻한 온기를 느껴보는 겁니다.
이렇게 갑자기 정전이 되어 '오프' 방향으로 내려가 버린 두꺼비집의 스위치를 '온' 방향으로 올려보면 어떨까요?
� 골프 경기에서, 마지막 중요한 퍼트를 남기고 있는 선수에게 캐디가 물병을 건네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긴장을 풀어주고 심적 여유를 주려는 이 방법이 언제부터인가 유행처럼 번졌어요. 근데 이 훌륭한 방법은 누가 발명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