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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시작이라고 예보된 날이었어요. 새벽부터 오던 비가 잠시 멈추었기에, 지금 아니면 며칠 동안은 운동을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늘 자신 있는 몸이었지만,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많이 약해졌습니다. 체력도 근력도 모두 바닥으로 내려왔죠.
집 근처 산책로를 걷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란 생각으로 매달렸어요. 처음엔 20분을 걷다가, 30분으로 40분으로 차츰 연장했죠. 거리도 이 주일 간격으로 늘려가고, 속도도 조금씩 가속했어요. 그날그날의 목표를 정하고, 걸으면서도 수시로 스마트와치를 들여다보며 시간과 거리를 체크했어요.
그렇게 네 달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어요.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려는 마음으로요.
이제야 조금씩 몸이 회복된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장마가 온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비가 와서 며칠 운동을 쉬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며 서둘러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km도 못 가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을 펼쳐야 했어요. 제 마음을 몰라주는 비가 야속했습니다.
우산을 쓰고서라도 속도를 높여보려 했지만, 내리는 비에 산책로는 물기를 머금어 미끄러워졌어요.
수술 후 폐색전증이 생겨 항혈전제를 먹고 있어서 피가 나면 멈추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순환기 내과 교수님이 얘기했고, 코 속 구조물을 거의 다 제거한 상태라 코에 충격이 가해지면 안 된다고 이비인후과 교수님이 당부했으니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어요.
결국 오늘은 계획된 속도와 거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할 수없이 천천히 어슬렁 거리는 산책 모드로 전환해야 했죠. 느린 속도로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산책로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는 달팽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왼쪽 천변에서 오른쪽 수풀로 이동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내친김에 쭈그리고 앉아 동영상을 찍으며 보니, 제 손으로 한 뼘 거리를 이동하는데 3분이 걸리더군요. 사람들도 자전거도 다니는 길인데, 언제 이 길을 건널 수 있을지, 보고 있으니 제가 다 조바심이 났어요.
그런데 이 녀석은 제가 보고 있건 말건, 누가 지나가건 말건, 묵묵히 쉬지 않고 같은 속도로 꿈틀대며 전진하더군요.
한참을 지켜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달팽이에게 사람처럼 빨리 가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는 걸요.
달팽이에겐 그에 맞는 속도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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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입니다.
1823년 기타 첼로라고도 불렸던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가 처음 탄생했고, 1824년 이 악기용 곡을 의뢰받은 슈베르트가 만든 작품이지요. 저는 주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두 거장이 함께 연주한 앨범을 통해 이 음악을 듣습니다.
어느 날 저의 '좋아요'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의 2악장이 귀에 쏙 들어왔어요. 아주 느리게 연주되는 아다지오(adagio) 악장이었어요. 아다지오는 음악에서 ‘천천히’, ‘매우 느리게’를 뜻하는 빠르기말입니다.
매일 같이 음악을 틀어 놓고 있지만, 책을 읽거나 일을 하면서 BGM 역할로 음악을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심히 들을 때가 많습니다. 이 곡도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30분 가까이 연주되는 곡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대부분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는 1악장을 좀 듣다가 하던 일에 집중하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거나 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아다지오 악장은 조용하고 느리게 연주되기에 더 그랬던 듯해요.
하지만 그날은 달랐어요. 평화롭고 여유롭게 연주되는 아다지오 악장을 좀 더 유심히 듣게 되었어요. 느리게 연주되는 선율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잊고 있던 옛 추억으로 저를 데리고 갔거든요.
초등학교도 가기 전, 어린 시절 자주 배가 아팠어요.
제가 당장 아파 죽겠다며 울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다가오셔서는, 제 웃옷을 가슴까지 걷어 올리고 배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쓸어 주셨어요.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라고 읊조리시면서요.
별 일 아닌 듯 차분하게 주문을 반복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5분이고 10분이고 있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배가 따뜻해지면서 아픔이 가라앉았어요.
2악장의 느리게 연주되는 첼로 선율은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담긴 목소리 같았어요.
그때부터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저에겐 할머니의 '약손' 같은 특별한 음악이 되었습니다.
늘 저를 천천히 어루만져 주며 안심시켜 줍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 잘될 거다. 다 잘될 거다. 조금만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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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는 빠르고 힘 있게 연주해야 하는 악장도 있고, 천천히 긴 호흡으로 연주해야 하는 악장도 있습니다.
좋은 연주라면 당연히 악보에 '느리게'라고 적혀 있다면,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연주겠죠?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천천히 가야 하는 때가 있죠. 그때는 서두르면 안 되는 것이고요.
인생이 음악이라면 저는 지금 아다지오 악장을 지나고 있는 겁니다.
조급하게 연주해선 좋은 음악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없나요? 근데 왜 이렇게 서두르지? 누가 잡으러 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