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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나무 Aug 26. 2024

2-4  오죽아 하하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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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그냥 편하게 막 타요."

암 진단을 받기 일 년 여 전에 자동차를 샀습니다. 그간 타온 차들 중에서 가장 비싼 차였죠. 과소비를 하는 편도 아니고, 오히려 무엇을 사든 '경제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지만, 이 결정은 달랐죠.

사업을 정리하는 시점이었기에, 이번만큼은 '경제적 가치'가 아닌 지난 시간의 노력에 대한 '훈장과 보상'이라는 관점이 차종 선택의 기준이 되었어요. 


구매 후 만족도가 아주 컸어요. 운전할 때는 물론이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죠. 애지중지하며 조심스럽게 다뤘어요. 운전할 때면 각별히 신경을 곤두세웠고, 주차장도 고르고 골라 시설 좋은 곳으로만 다녔어요. 발레 파킹을 해야 하는 곳에는 아예 이 차를 타고 가지도 않았죠.

그런데 암 환자로 6개월을 지내다 보니, 차도 저처럼 주차장에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 했어요. 아까운 생각이 들었죠. 다시 '경제성 우선' 본능이 깨어났어요. 게다가 이전과 다르게 운전하는 게 겁이 났어요. 모든 면에서 자신감이 떨어진 때문이겠죠. 아끼는 만큼 이 차는 더 부담스러웠어요. 결국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이 차를 팔고, 조금 낮은 가격대의 차로 교체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차에 대해서도 잘 아는 친한 후배에게 문의를 했죠. 그때 돌아온 답이 이랬어요.

"형, 그냥 편하게 막 타요.", 

"상처 좀 나면 어때요, 흠집이 조금 있건 없건, 어차피 차 팔 때는 큰 차이 안 나요. 매각 시점의 시세가 더 중요하죠."


다시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다, 계속 타기로 결정했어요.

이 차를 살 때 기대했던 가치는 '경제성'이 아니었어요. 성취감도 만끽하고, 기쁨도 누려보자는 생각이었죠. 부담감에 눌려 있느라 이를 잊고 있었어요.


후배의 조언이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맞아요. 기분 좋게 막 타다 보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겠죠. 치유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면, 기호품이 아닌 필수품인 거죠.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려고 마음먹었어요. 



#

Q. 림프종(림프암) 재발을 막기 위해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요?

A. "사실 무엇을 잘못해서 림프종에 걸린 것은 아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도 아니고 나쁜 짓을 해서 걸린 것도 아니니까 특별히 조심할 것은 사실 없다. 그냥 재발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하지 말고, 괜히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하루 종일 림프종 생각만 하지 말고 즐겁게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면 된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이 오라고 할 때 오고 추적 검사 하자고 하면 잘하면 된다. 물론 음주는 하지 말고 금연은 필수이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교수가 쓴 칼럼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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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진단을 받고 처음엔 죽음부터 떠올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죠. 오늘내일 죽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그럼 오늘, 내일은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정답인 듯 떠오르는 건, '오늘에 충실하자'였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이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보자.'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을 이끌고도 매 순간 충실하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생각이 커졌어요.

'근데, 어느 정도 해야 충실하다고 할 수 있지?' 

'충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너무 컸어요. 매일 부족한 것 같았어요.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 만족할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저를 짓눌렀어요.


어느 날 이런 고민을 하며 운전하고 있는데, 내면의 외침이 들렸어요. 

'또 시작이냐? 맨날, 그렇게 너 스스로를 압박하고, 부담 주고, 스트레스 주니까, 암까지 생긴 거잖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맞는 말이었어요. 반박할 여지도 없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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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그냥 편하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보자.'

'일단은 건강이 최우선이다. 정신 건강도 중요하다.'

'미소 지을 수 있는 하루면 충분하다.'

'충실한 건 덤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물론, 그 마음이 늘 유지되는 건 아닙니다. 여차하면 '불편 모드'에 가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문을 외웁니다.

"오죽아 하하즐!"


'오늘 죽는 건 아니니, 하루하루 즐겁게!'를 줄인 말입니다.

물론 제가 만든 말이죠.^^


글 읽느라, 쓰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죽아 하하즐!"



 





�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바보, 왜 또 그랬어?", 이런 말은 아니겠죠? 용기를 듬뿍 주는 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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