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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Mar 29. 2024

수학 + 인간관계 = 평행선

유클리드의 '원론'

태양은 이글거리기를 준비하는 듯하다. 가끔씩 맞부딪치는 바람이 뺨을 스칠 때는 태양빛을 잠시 잊게 해 준다. 하지만, 왕자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하다.


'조금 있으면 기하학 시간이 다가오는데, 이를 어쩌지. 스승님이 주신 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손을 대지를 못할 지경이다. 아.'

 

왕자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다가,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이다가,  다시 털썩 의자에 주저앉는다.  

'얼마 전 에도 나일강이 범람해서 한바탕 곤욕을 치렀지.  매년 곤욕을 치르는 일인데도 겪을 때마다 새롭다. 아버지나 스승님은  댐도 만들고 여러 공사를 하려면  기하학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지만 도대체 어떻게 써먹었어야 하는 지  모르겠어. 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안되니 힘들 뿐이다. 좀 더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스승님은 알고 있으신 것 같은데... 일부러 안 가르쳐 주시는 건 지도 몰라.'

 

왕자는 다시 고개를 들고 방안을 서성이더니 바깥 경치에 잠시 눈을 돌렸다. 계단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스승을 발견한다. 깊이 파인 눈, 회색의 굽실한 머리카락은  머리 뒷부분만 잠깐 감싸고도느라,  이마는 그 모습을 훤히 드러내고 있고,  오늘도 어김없이 아주 큰 나무 컴퍼스를 들고 있다.

" 문제는 고심을 하였느냐?"

" 저기... 스승님 "

" 말해 보거라 "

" 기하학이 제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스승님. 이틀을 꼬박 생각을 했지만 해결을 못하고 풀이가 딱 멈추어져 버렸습니다.  제겐 기하학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니... 저... 좀 쉽게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  그리스의 이성을 대변하는 것이 기하학이고 기하학이 진리를 깨우는 방법이며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

스승은 제자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  논리로만 전개되는 이 기하학을 어디에 써먹습니까? 스승님 "

왕자는 양미간을 모으며 억울한 얼굴로 물었다.

" 너는 장사나 해서 돈이나 벌어라 " 스승은 역정을 내며 돈 몇 푼을 책상 위로 던지며 이거나 가지고 나가라면서 왕자를 내쫓으려고까지 하였다.


왕자는 기원전 305년부터 330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이다. 기하학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가진 그의 스승은 '유클리드'라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속 유클리드, 유클리드 답게 컴퍼스를 들고 있다. 그를 찾아보자.



'세계에서 첫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이 무엇일까?


'성경'이다. 그리고 두 번째를 이은 책은 수학 분야 '원론'이며 그 저자는 유클리드이다.

유클리드의 '원론'이 이렇게 많이 팔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유클리드는 피타고라스 이후 나온 많은 분량의 수학 발견들을 단순하고 논리적으로 재구성해 한 군데로 모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편집장 역할을 자처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이제껏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던 기하학의 내용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재배치한 한 권의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다. 학교의 수학교과서로 쓴다는 것은 모두가 공인해야 하며, 동일한 내용을 가르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짜여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원전에 '원론'이 해냈고, 그러니 많이 찍어낼 수밖에 없었다.

영예로운 자리는 원론이 차지하는 것이 자명하다.



이제, '원론'을 살펴보자.

 

점은 쪼갤 수 없다.


이것은 원론의 첫 문장이다. 점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선, 면 등 23가지 정의를 나열하고 드디어 '공리'가 나타난다.

 

유클리드의 공리 (Axiom)


1.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을 그릴 수 있다.

2. 선분은 양 쪽으로 무한히 연장할 수 있다.

3. 한 점을 중심으로 무한히 연장할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공리'란 누가 봐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며 증명이 불가하다.

수학자들은 어떤 사실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을 증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수학 문제가 증명될 수는 없다. 수학자들도 증명을 포기하고 "그건 그냥 그래, 그건 그냥 옳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수학자들은 그런 명제를 '공리'라고 한다. 기원전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자신이 보기에 자명하고 명확하고 증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10개의 공리를 제시했다. 평면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기하학의 개념들은 '원론' 덕분에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었다.

 

다섯 공리에 등장하는 '점' 대신 '사람'으로 바꾸어 읽어보자.


두 사람을 연결하는 선분을 그릴 수 있다.
연결은 또 다른 연결을 만들고 계속하여 뻗어나간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원형의 네트워크를 그릴 수 있다.
연결되는 모든 사람은 서로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을 수 있다.
공유할 수도 있지만 너와 나는  결국 영원한 평행선이다.


유클리드 공리에서 인간관계가 보인다.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부부라는 건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마주 보면 늘 싸우는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부부만 그럴까.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방향성, 즉 공감대가 없다면 관계는 이어질 수 없다.


그렇기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다.


마주 보아야 관계를 얻을 수 있지만, 마주 보기만 한다면 늘 싸운다. 네가 내 감정을 먼저 읽어주고 내 섭섭함과 상처를 눈치채 달라고 요구한다면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 잘 지내려면 각자가 서로 감정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내가 먼저 삶의  주체가 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만의 가치관을 확보해야 한다. 독립적인 인격체들이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한다.


우린 잘 지내려면, '평행선'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감정, 삶의 가치관, 외면과 내면을 솔직하게 서로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 나에게 맞추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함께 하려면 영원히 만나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의 인생 그 자체, 살아온 바탕인 감정, 그리고 타인의 외면과 내면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배려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인생을, 나답게 꾸려가고 있는가.


내가 꾸리고 있는 인생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공리(Axiom) 무엇인가?

 

원론의 영어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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