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게 아닌데(5)

졸업생 공연 연습

by 생각의 변화

1012 캐스팅


몇 년 전 아버지께서 모교의 병원에 입원했다. 2주 정도 입원해 있는 동안 두 번 정도 병문안을 했는데 두 번째 방문 때는 아버지와 병실에서 출발해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대학교 교정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버지는 입원해 있는 동안 매번 같은 코스로 산책을 하셨는데 결국 목적지 혹은 반환점은 매번 푸른 타일로 덮인 공과대학 건물이었다.

반환점을 돌고 병원으로 가는 중에 백주년 기념관 근처 벤치에 앉았다.

“난 저 건물만 보면 기분이 좋다” 하얀 바탕에 푸른 패턴이 들어간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가 벤치에 앉은 채 공과대학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요?”

“너 때 대학 합격자 명단이 저 벽에 붙었잖냐”


아버지는 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걸 눈치챈 후 여태껏 열 번도 넘게 들었던 얘기를 반복했다. 얘기인즉슨 그해가 ARS로 합격자를 알려 주는 첫해였고, 당신은 공과대학 벽에 붙어 있는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기 전에 이미 ARS로 내 합격 사실을 알았고, 모르는 척 어머니와 나를 데리고 학교로 왔고,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수도 없이 전화를 걸어 ARS에서 나오는 합격이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그 이야기. 아버지가 여태껏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하셨다. 형도 동생도 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굳이 내가 합격했던 순간을 꼽는 이유는 내 성적과 당시에 받았던 시험점수를 생각했을 때 좀 의외였기 때문이다.

영화 <A.I>에서 엄마 모니카를 만나고 싶어하는 아이 로봇 데이빗의 소망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지구가 얼음으로 덮인 후 외계 생명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것도 단 하루만. 너무나 바라는 것들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린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더 절실히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그런 순간이 한 번 더 있었다. <신이국기>에서 서동으로 캐스팅 됐을 때. 당시에는 기뻐하기보다는 걱정을 훨씬 더 많이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순간 때문에 지금 연극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린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그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건 아니다.

예전에 <로미오와 줄리엣> 연출을 할 때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독일 여행 계획을 잡아 놓은 후배에게 줄리엣 역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후배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며칠 고민 끝에 결국 수락했다. 후배는 비행기표와 모든 숙소 예약을 취소해야 했고 평소에도 연극하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연극반 모임에서 후배를 만났다.

“그땐 고마웠다.”

“고맙긴요, 오빠. 줄리엣이잖아요.”

후배의 말을 듣고 보니 나 역시 그랬던 것같다. 현실의 삶속에서 언제 우리에게 서동이나 줄리엣이 되는 순간이 찾아 오겠는가.


첫 모임 이후 발달장애가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서 봤다. <살인의 추억>의 백강호, <마더>의 윤도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 그리고 자폐스펙트럼 장애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참고했지만 딱히 조련사와 맞는 캐릭터는 없었다. 백강호와 윤도준은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고 우영우는 너무 상위 버전이고.

은하는 조련사가 단조로운 톤과 사회성 결여 정도를 보면 소셜 스킬이 어느 정도는 되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비슷하다고 했다. 대체적인 의견은 배우 윤상화가 연기하는 조련사는 우리가 봤던 작품 어느 캐릭터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인 것이다.


나와 성복은 2주 동안 생각했던 혹은 연습했던 걸로 대본 리딩에 임했고 최종적으로 내가 조련사가 됐다. 조련사라는 주인공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했던 것이었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은 그걸 대답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거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순간을 들춰보는 때가 올까. 그때도 여전히 연극은 내게 의미 있고 소중한 작업으로 남았을까.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에 대해 질문만 할 뿐 대답할 수는 없으니.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게 아닌데(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