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Oct 29. 2022

'소리의 죽음'을 추억하며

이안정 : 눈물을 다져 넣어

눈물을 다져 넣어 

             이안정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


어둠이 내리는 별의 커튼을 닫고 

쏟아지는 침묵의 시간을 잘라버리면 


축담의 층계 앞에 내려앉은 민들레 씨앗이

공간의 경계를 꺾어 엮어낸 시간 속에서 

초록의 희망을 밀어 올린다. 


허공으로 그어버린 한 획의 고독을

응어리진 상처에 가두어 두고 


소리를 때리는 틈과 틈 사이로 

침묵을 채우는 흔들거리는 그림자들


삼켜버린 소음은 니제르의 

강처럼 죽은 파도를 삼키고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눈물을 다져 넣은 서러움으로 

허기진 추억을 읽고 또 읽는다 


뾰족했던 모서리들은 어느새 

둥근 발목처럼 그 자취를 잃어가고


낡아버린 음성들을 갉아먹으며 

해갈되지 않는 부르튼 서로의 

갈증에 위로를 보낸다


침묵은 소리를 덮고 

오늘도 낯선 의미 속에서 그 무엇이 된다


Tamping down Tears

               Lee, An-Jeong


There is a sound no one can hear. 


When the star-lit curtain is closed in falling darkness,

And the time of showering silence sharply cuts,


Dandelion seeds sitting on the stairs of a fence

Push up their hope of greenness

In the midst of time woven by the boundary of space.  


Hiding a stroke of silence drawn on the void

In indelible scars,


The faltering shadows fill the silence 

Between the cracks making the sound. 


Like the Niger River, drowned noises

Swallow the dead waves,


And, without learning how to cry, 

Read and read again the starving memory

With tear-tramped sadness. 


The pointed corners have already

Lost their traces like round ankles,


Nibbling away their worn-out voices

And sending condolences to each other’s 

Unquenched, blistered thirstiness. 


Silence covers up the sound

And becomes something in a strange meaning today.


침묵은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 그 긴 ‘소리의 죽음’ 속에서 생명은 초록의 희망으로 솟아나는가! 하지만 침묵은 고독, 상처 입은 마음에는 여전히 외로운 그림자 흔들리고 삶의 소음이 흩어지던 날 여전히 눈물로 새겨진 그날의 기억들, 추억의 조각들. 젊음의 날카로움은 시간의 단단함에 마모되어 사라지고 이제 여전히 충족되지 못한 목마른 삶에 그저 위로를 보낸다. 하지만 더 이상의 소리를 허락하지 않는 생의 날들이 던져주는 존재의 의미에 오늘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다져 넣는다.


* 위의 영문은 2022년 9월 3일 이안정 시인이 브런치에 올린 시 ‘눈물을 다져 넣어’를 영역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없어서 편안한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