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 짧지만 흥미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외국 영상으로 보이는 것에 우리말 자막이 붙어있었다. 우리가 처한 세 가지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풍자적이지만 신랄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1) 당신이 바닥에 있을 때는? --- 다른 이들은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2) 당신이 중간에 있을 때는? --- 다른 이들은 당신을 무시한다. (3) 당신이 높은 곳에 있을 때는? ---
이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시니컬하다. 당연히 사람들이 몰리고 그들의 숭앙을 받을 것이라고 말할 것 같지만 영상의 마지막 대답은... ‘사람들은 당신을 증오한다.’였다. 과연! 얼마나 옳은 말인가. 이 말의 포인트는 높은 지위에 있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비난과 미움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초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은 우리에게 따뜻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 굳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모여서 함께 사는 사회이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 내에서 우리는 참 별 것이 아니다. 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어느 순간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조직은 계속된다. 개인은 그저 잠시 왔다가 사라지고 마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넷길 아닌가. 사회 속에서 개인은 이름을 상실한다. 자신의 정체성은 소속 기관의 위치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자신의 본모습을 잊은 채 타인과의 관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언제 내게, 나의 생각에, 나의 상황에 진정한 관심을 가져준 적이 있는가? 그것은 원할 수도 없고 실제 가능한 일도 아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놓아도 어차피 사람들은 그것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눈을 돌릴 뿐이니까.
관계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큰 중요성을 두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사랑법인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래서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아프게도 한다. 가족을, 친구를 가벼이 여기고, 달콤한 타인의 거짓 웃음과 말에 속아 사랑하는 이들을 버리고 결국은 혼자 남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영원한 행복 같은 것은 없다. 우리의 삶은 이 행복 저 행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일 뿐이다. 그 이유는 결코 완전한 만족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결코 완벽한 관계는 없다. 그러니 삶의 한 시기에 만들어낸 타인과의 관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타인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상처 입고, 그들에게 절망하지 말라는 얘기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다중(多衆)의 기호나 경향에 함몰되어 스스로를 잊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두 발을 굳게 딛고 스스로를 곧게 세우는 키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 흔들리고, 비에 젖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는 교목(喬木)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