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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30. 2024

자기 연민의 두 얼굴

자기 연민(Self-pity)은 자신에게 관대한 것을 의미한다. 실수를 저지르거나 상황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스스로를 격려하고 돌보고자 하는 욕구이다. 자신을 한탄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자기비판이나 자기 비하와 반대되는 태도이다. 오스틴 텍사스 대학 교육심리학과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교수는 "우리 대부분은 인생에서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좋은 친구를 갖고 있다.... 자기 연민은 스스로에게 따뜻하고 힘이 되는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달리 말하면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친절하고 스스로에게서 희망과 의지를 찾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네프 교수에 따르면 자기 연민은 우울과 불안을 해소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높여준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유지하는 조절 능력인 것이다. 네프 교수는 이를 자존감과 구분한다. 자존감은 경쟁의식을 동반하고 따라서 실패나 패배를 겪으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자존감은 “성공과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황에 따라 좌절에 빠지거나 상대에 대한 공격성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이에 반해 자기 연민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과도한 자기 비하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연민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자위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위로와 안정감을 나 자신에게 부여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몇 가지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첫째, 자신의 위로만으로 부족할 때,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를 어려움에 빠진 존재로 설정하고 타인의 동정심을 유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나약함을 보완할 수 있는 힘 있고 이해심 많은 사람들을 찾아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 독립적인 자아를 세우기보다는 자신을 자기만큼 위하고 이해해 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를 조종하고 이용하려는 태도가 서툴고 어설프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는 종종 대인 관계에서 타인의 혐오와 분노를 촉발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자기 연민이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격려, 용기와 희망의 범위를 넘어서서 타인의 이해와 동의를 강요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 개인은 독립적인 개체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 삶의 정도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타인의 이해와 도움이 더해지는 것이다. 


자기 연민은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타인의 인정이나 동의를 강요하는 것은 결코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라 할 수 없다. 평생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무엇도 들을 수 없는 없었던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연민은 최악의 적이다. 그것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현명한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위대한 것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타인의 연민이나 동정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연민에 대한 이 상반된 인식은 결국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태도로 자신을 대할 것 인지에서 비롯된다. 그릇된 자기 연민은 유령의 집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비틀어 비출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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