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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01. 2024

핏빛 같이 붉은 9월의 눈물

꿈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A Dream

       Boris pasternak


I dreamt of autumn in the window's twilight,

And you, a tipsy jesters' throng amidst. '

And like a falcon, having stooped to slaughter,

My heart returned to settle on your wrist.


But time went on, grew old and deaf. Like thawing

Soft ice old silk decayed on easy chairs.

A bloated sunset from the garden painted

The glass with bloody red September tears.


But time grew old and deaf. And you, the loud one,

Quite suddenly were still. This broke a spell.

The dreaming ceased at once, as though in answer

To an abruptly silenced bell.


And I awakened. Dismal as the autumn

The dawn was dark. A stronger wind arose

To chase the racing birchtrees on the skyline,

As from a running cart the streams of straws.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창가의 해질녘 나는 가을을 꿈꾸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술꾼들 사이의 당신을.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웅크린 채

내 마음은 다시 돌아와 당신의 팔목 위에 내려앉는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늙어 귀머거리가 되었다.

녹아내린 매끄러운 얼음처럼 낡은 비단천이 편안한 의자 위에서 썩어갔다.

정원 너머로 보이는 우쭐한 석양이

핏빛 같이 붉은 9월의 눈물로 유리창을 물들였다.


시간은 늙어 귀머거리가 되었고 목소리가 컸던 당신은

너무도 갑자기 잠잠해졌다. 이렇게 잠시의 휴식은 깨어졌다.

마치 느닷없이 침묵한 종소리에 응답하듯

꿈은 즉시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쓸쓸한 가을처럼

새벽은 어두웠다. 세찬 바람이 일어나

하늘 위로 달리는 자작나무들을 뒤쫓았다.

마치 달리는 마차가 일으킨 지푸라기의 흐름처럼.    


러시아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이 시를 만난 순간 나는 긴 세월을 거슬러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를 떠올렸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소설을 각색한 영화.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스크린에 러시아 혁명과 내전 그리고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이 장엄하면서도 비극적으로 펼쳐졌었다. 화면 하나하나가 마치 예술 사진과도 같았던 ‘닥터 지바고.’ 50년이 훌쩍 넘은 그 기억이 아스라하다.


9월의 첫날, 이 시의 한 구절이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핏빛 같이 붉은 9월의 눈물’. 시인은 꿈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매처럼 날아 그대의 팔목에 앉았건만 세월은 멈출 줄 모르고 더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잃어버린 기억처럼, 꿈처럼. 쓸쓸한 초가을의 어둑한 새벽에 창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자작나무만이 보일 뿐. 인생은 달리는 마차가 일으키는 흙먼지 같은 것. 가라앉은 먼지처럼 사라져 가는 것.  


* 위의 시는 러시아어의 영문 번역을 우리말로 중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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