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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자리 비워도

by 최용훈

마음자리 비워도


썩은 감자를 봉지에 넣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지요.

헛된 미움을 마음에 담으면

평화로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소담한 들꽃을 유리병에 꽂으면

들판의 향기가 주변을 채우지만

불안한 거짓을 입 밖에 내면

머릿속엔 핑곗거리만 가득합니다.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는

웃음소리 산 넘어 퍼지지만

악한 이들이 힘을 가지면

아우성과 통곡만이 흐르겠지요.


세상사 너무도 뻔한 이치인데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마음 깊이 숨은 욕심 때문일까요

가버린 시절에 대한 미련 탓일까요.


술도 오래된 것이 좋고

벗도 오래될수록 좋다지만

마음에 오래 품은 미움과 슬픔은

갈수록 그 그림자 짙어만 갑니다.


건넌방에 둘러앉아 잣 까던 벗님들

어디서 무얼 하든 마음자리 비워서

수북이 쌓이던 잣알들처럼

희고 맑은 기억의 조각들로 채우기를.


사랑하는 이 떠나가면

마음 깊은 곳 슬픔으로 적시지만

함께 했던 시간의 빈자리는

그리움으로 덮습니다.


그 무엇으로든

이 마음은 비워지는 일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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