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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기 전에

by 최용훈

나의 시


내 시는 산문 같다

압축도 음악도 없다

산문 같은 시

시 같은 산문도 있다는데

내 시는 길이를 줄인

영락없이 건조한 문장일 뿐이다

언젠가는 시 같은 시를 써야지

몇 줄의 글이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고

흠뻑 젖은 삶이 되어서

읽는 이를 감동시키고

눈물짓게 하고

저 먼 옛 길을 걷게 하는

시 다운 시를 써야지


시인이 아닌 내가 시를 쓸 수 있을까

시라고 할 수 있을까

등단을 하고 시집을 내고

시 잡지에 기고를 해야 시인인데

수 천 개의 시를 읽고

수백 번 고쳐 써도 내 글이 시일까

시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시다운 시를 써야지

내가 읽어도 아련해지고

그때의 감정에 새로운 감정을 더해서

이게 시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를 써야지

세상의 수많은 시인과 평론가들이

시라고 불러주는 시를 써야지


그러고 났더니 시가 써지지 않는다

시인도 되기 전에 절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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