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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30. 2020

에로스, 그 빛과 그림자

에로스의 두 화살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살아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공자의 말이다. 같은 세상에서 숨 쉬고, 같이 푸른 하늘을 느끼고, 함께 저녁놀을 보고 눈물짓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사랑이기를 바란다. 감각적이고, 열정적이고, 무한한 그리움을 일으키는 애끓는 남녀 간의 사랑, 그것이 에로스이다. 연인들의 날인 성 밸런타인데이는 겨울의 끝자락에 온다. 그리고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린다. 사랑은 봄의 새 생명처럼 그렇게 푸르고 은밀하게 다가온다. 황제의 허락 없이 사랑하는 연인들을 결혼시킨 죄로 순교한 사제 밸런타인. 그가 생명을 버린 그 날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날이다. 그러나 사랑은 연인들을 눈멀게 한다. 그들은 사랑이 언제나 영원할 것을 믿는다. 사랑의 그 진한 열정, 그 간절한 그리움, 그 수많은 고뇌와 상심, 그리고 그 빛나는 환희! “사랑은 폭풍우 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히 고정된 표식... 사랑은 시간의 노리개가 아니다. 그녀의 장밋빛 입술과 뺨이 시간의 낫이 휘둘러지는 곳에 있다 하더라도, 사랑은 짧은 시간에 변하지 않고, 운명의 끝자락까지 버텨내는 것.”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소네트에서 그렇듯 변치 않는 사랑을 노래했다. 그렇게 변치 않을 것을 염원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에로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큐피드라 불린다. 그들은 두 개의 화살을 갖고 있다. 사랑을 일으키는 금촉의 화살, 그리고 그 사랑을 식게 하는 납촉의 화살.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이별을 예감한다. 언제 어떤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에로스의 화살이 두 개인 것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 같은 사랑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강렬한 것이 있을까? 하지만 그 뜨거운 열기가 식을 때 사랑은 외롭다. 쓸쓸하다.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넌(John Lennon)은 사랑은 ‘감촉’(touch)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는 것’(reaching)이라 말한다. 그의 ‘사랑’(Love)이라는 노래의 가사 속에 나오는 말이다. 그 따뜻한 촉감과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그리움, 그것이 사랑이다. 레논의 프로필은 단 두 줄이었다. ‘1940년 10월 9일 출생, 1966년 오노 요코를 만남.’ 행위예술가인 그녀를 만나는 순간, 레논은 다른 모든 만남의 의미를 상실한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미 기혼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가정을 포기하고 하나가 된다. 그는 평화를 염원하는 그녀의 반전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묘비명이 된 ‘이매진'(Imagine)이 그렇게 탄생한다.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사랑은 서로를 탐닉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레논의 팬들은 자신들에게서 그를 빼앗아 갔다고 오노 요코를 악녀라 불렀다. 사랑은 환희와 함께 고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환희와 고통은 1980년 12월 8일 레논이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함으로써 지상에서는 그 끝을 맺는다. 외롭고 쓸쓸한 에로스의 종말이다.     


왕관을 버린 사랑    

  

영국의 에드워드 8세(Edward VIII)는 1936년 4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잘 생긴 외모에 클래식 슈트가 잘 어울렸던 그는 당시 영국의 패션을 선도하기도 했다. 겸손한 성품에 유머 감각까지 갖춘 국왕은 영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운명처럼 미국인 심슨 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한 번 이혼을 하고 두 번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유부녀였다. 그는 매일처럼 심슨 부부를 궁에 초대했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다. 마침내 심슨 부인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남편과 헤어진다. 그러나 미국인 데다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그녀를 영국인들은 결코 왕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국왕의 사랑은 변치 않았다. 마침내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뒷받침이 없이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는 말을 남기고 퇴위를 발표한다. 동생인 조지 6세(George VI)에게 왕위를 넘기고 쫓기듯 프랑스로 건너가 불과 16인의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린다. 에드워드 8세는 퇴위 후 윈저의 공작이라는 작위를 받는다. 그리고 197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5년의 세월을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한 삶을 누렸다.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사랑은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게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의심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심슨 부인이 에드워드 8세의 지위와 재산을 노리고 그를 유혹했고, 그와 만나는 동안에 조차 주영 독일대사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녀의 영향을 받아 에드워드 8세가 공식적으로 히틀러를 찬양하고 결혼 후 부부가 함께 히틀러를 방문한 일, 그리고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그들에 대한 저주.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슨 부인에 대한 에드워드 8세의 사랑을 폄하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왕위는 그렇게 쉽게 포기할 대상이 아니고, 오랜 세월을 부부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으로는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Ralph Emerson)은 ‘슬픔이 우리를 아이로 만든다.’라고 말했지만, 사랑도 우리를 아이로 만드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순진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없으니까.    


단테와 베아트리체-사랑과 상상력    

  

베케오 다리 위의 단테와 베아트리체

사랑은 끊임없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은 누구나 위대한 시인이 된다. 사랑의 감정이 시적 상상력이 되고 아름다운 시어가 되기 때문이다. 13세기 이태리의 시인 단테는 어린 시절 만난 한 소녀를 사랑한다. 베아트리체.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은 세월이 흘러 각자 결혼을 해도, 그리고 그녀가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도 그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었다. 단테가 그녀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18세가 되던 해였다. 그의 인생에 단 두 번 본 여인, 그는 그 여인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자전적 시집 ‘새로운 삶’(The New Life)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 마음속에 깨워진/ 잠자던 사랑의 정신/ 그렇게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랑을 보았소. 너무도 기쁘게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오.”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단테의 소네트들은 사랑을 영원한 문학적 테마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작품 ‘신곡’을 탄생시킨다. 작품 속에서 단테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연옥과 지옥을 돌아보고, “내 마음의 주인”이라 묘사한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을 여행한다. 단테는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한 그 여인을 자신의 문학 속에 영원히 빛나게 하였다. 연인에 대한 사랑은 그렇듯 위대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지금도 두 사람이 만났던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에는 또 다른 젊은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설레는 마음으로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에로스의 그림자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된다면 그 사랑은 진정 가치 있는 것일까? 19세기 영국의 여류 소설가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는 제인과 로체스터 사이의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이야기이다. 정신병에 걸린 로체스터 부인에 의해 저질러진 화재로 팔과 두 눈을 잃은 그에 대한 제인의 헌신 그리고 행복한 결말, ‘제인 에어’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20세기 다른 여성작가에 의해 속편이 출간되면서 이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도미니카 연방 출신 무명작가 진 리스(Jean Rhys)는 두 사람의 사랑 사이에서 희생된 로체스터의 부인 버사 메이슨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앙트와네트(버사 메이슨)는 영국 혈통의 백인이지만, 식민지 흑인 원주민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흑인 노예들의 폭동, 어머니와 병약한 동생의 죽음, 자신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본토인과의 원치 않은 결혼 등 그녀의 삶은 혼돈 속에 빠진다. 마침내 원시적이고 척박한 타지에서의 생활에 싫증을 느낀 남편을 따라 그녀는 영국으로 이주한다. 남편의 냉대와 외로움, 과거의 삶에 대한 그리움으로 미쳐버리자, 남편 로체스터는 그녀를 다락방에 감금한다. ‘제인 에어’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녀는 한 밤 중의 울부짖는 소리, 음울하고 괴기스러운 모습으로만 묘사될 뿐이다. 진 리스는 ‘제인 에어’ 속의 그녀를 꺼내어 ‘광막한 사가르소 바다’(Wide Sagarsso Sea)라는 작품을 창작한다. 그리고 다락방 속에 갇힌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재현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그렇게 탄생한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빛 속에 숨은 어두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의 세계 속에 창조된 에로스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작가 진 리스와 '광막한 사가르소 바다'

  

에로스, 남녀 간의 사랑. 그것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사랑만큼 우리의 감정,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 것은 없다. 기억하는가. 사랑에 빠져 잠 못 이루던 그 숱한 밤들을.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추억들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만들어내는 사랑이라는 존재. 에로스,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그 날부터 우리의 삶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카오스가 된다. 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새로운 인식에 눈 뜨게 한다. 영국 가수 엘튼 존(Elton John)은 ‘당신의 노래‘(Your Song)에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은 우리가 돌려야 하는 열쇠지요.”(Love is the key we must turn). 그것은 사랑이 이끄는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를 암시한다. 사랑의 열쇠로 열리는 에로스의 세계는 늘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늘 그리워하게 하고, 늘 눈물짓게 한다. 그리고 에로스가 쏜 또 다른 화살의 표적이 되는 날,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쓸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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