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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10. 2020

진눈깨비보다는 함박눈이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If We Are Snowflakes

         by Do-hyun Ahn     


If we are snowflakes,

We should be anything but sleets

Hesitatingly drifting in the air.

However windy, cold and dark the world is

Let us go to the lowest place

Where people live

And come down in large flakes.

If we are snowflakes

We should be a letter by the window

To the one who does not sleep

And be proud flesh

On his deep, red scars.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우리는 늘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도 사는 동안 나름의 세상은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죠. 남에게 피해가 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존감은 지키고 살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의 존엄성은 값이 없다고 합니다. 조금씩 깎아주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거죠. 가끔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를 꺾어 누르고, 잔인하게 학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나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부당한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나의 존엄성은 결코 사라지거나 약화되지 않습니다.


눈이 되어도 질척이는 진눈깨비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슬픈 사람들을 따뜻이 감싸주는 함박눈이 되고 싶습니다. 어디든 날아가 잠 못 드는 사람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아픈 상처에 새살이 돋게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삶은 헛되지 않다고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주변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곧 눈 내리는 계절을 맞이하겠죠. 소나무 위에 소담히 쌓이는 흰 눈은 아기의 뽀얀 엉덩이처럼 미소를 짓게 합니다. 이번 겨울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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