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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2. 2020

사소한 것들

우리는 사소한 것들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 결혼, 성공, 행복,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다. 물질적 풍요, 높은 지위, 행복한 가정, 변함없는 우정, 고귀한 희생과 헌신, 굳건한 믿음과 용기. 이 모든 미덕들은 우리의 삶을 밝히는 빛이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삶의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가치와 목적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추구의 과정에서 우리가 쉽게 놓쳐버리고 마는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이다.     


인생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은 그 꼭대기에 올라선 후 다시 내려오는 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캐나다의 탐험가 스티브 도나휴(Steve Donahue)는 인생을 사막에 비유한다. 등산은 정상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지만 사막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사막에서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저 대충 방향을 정하고 스스로 갈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불확실한 가운데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사막과 같은 인생길에서 거창한 삶의 목표들은 신기루와 같다. 우리는 그 희미한 신기를 쫓다가 좌절한 길 잃은 카라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신기루보다는 모래 위의 한 걸음처럼 작은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삶의 긴 여정에서 우리와 늘 함께하는 사소한 것들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사소한 것들, 그것은 무엇인가?     


사소한 것에 대한 그리움     


잠에서 깨어나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철 지난 바닷가 보드워크를 걸으며 듣던 파도소리, 옛 시절을 떠올리는 비틀스의 노래, 프랑스 니스 해변 부근의 주택가 언덕 위에서 찾아낸 마티스 미술관의 적막했던 입구, 한동안 잊고 산 옛 친구의 전화, 색 바랜 책갈피에 끼워져 있던 나뭇잎 하나, 수많은 그 사소한 것들이 추억을 깨우고, 그리움을 부르며, 삶을 이룬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소한 것들을 잊고 산다. 당연한 것이어서, 지나쳐도 괜찮은 것이어서, 잊어도 그립지 않을 것 같아서, 하지만 문득 그 사소한 것들이 나의 주변에서 사라짐을 느낄 때, 우리는 깊은 적막과 외로움에 빠진다.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던 서울 출생의 강인오 시인은 놓쳐버린 그 사소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우리들 마음엔 언제나 사막 같은 두려움이 있다. 

해야 할 말만 하고, 가야 할 길만 걷는 동안

무수히 지나간 사소한 햇살 사소한 사랑 가녀린 한숨들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 빠져나가....    

사막에서는 지도가 필요하지 않다.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지도 대신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따라 비틀거리지 않고 걸어야 한다. 그렇게 무작정 걷는 동안 우리는 여행길의 그 많은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먼 길을 와서야 돌아서 그것들을 아쉬워한다. 그렇게 우린 많은 것을 잃고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젠 되돌릴 수 없는 그것들을 그리워한다.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     


우리의 삶은 지나치게 ‘거대 서사’(grand-narrative)에 몰두해 있다. 역사의 주류를 형성해 온 거대한 사상과 철학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는 구체적인 삶의 궤적들을 놓치고 있다. 서양의 역사교과서는 역사적인 대사건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대중가요의 발전사, 담배나 신발, 스타킹과 립스틱의 기원과 역사 등 사소해 보이는 것들도 역사의 맥락 속으로 끌어들인다. 심지어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장을 따로 마련하기도 한다.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일상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역사의 주역 일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소한 것들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장 보드리아르(Jean Baudrillard)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하여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국 구체적인 삶의 조각들인 ’소서사‘(mini-narrative)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심과 변방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준 높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을 차별하지 않는다. 음악에 있어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넘어 ’크로스오버‘(cross-over)가 가능해진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우리는 이제 사소한 것들, 평범한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돌 위에 서는 것이다.” 힌두교의 오랜 속담이다. 산만 보지 말고 그 산을 만든 바위를 보라는 가르침이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 만드는 위대함을 깨닫는 것, 그것이 사소함의 지혜이다. 부친에 이어 로마의 대 정치가가 된 플리니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곁에 있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을 무언가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이 말은 사소한 것조차도 늘 진지하고 주의 깊게 찾아보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지만 한편 우리가 얼마나 주변의 낯익은 것들을 소홀히 하는지를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독일의 시인 릴케는 “세상이 마술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책망하라. 그 아름다움을 끌어내지 못한 당신은 시인의 자격이 없으니까.”라고 쓰고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 그 사소한 것들은 마술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단지 우리가 보지 않고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뿐인 것이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사소한 것들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준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만족을 주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불안감과 좌절감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 스페인의 철학자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의 말이다. 작은 것의 가치나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큰 것의 가치를 제대로 깨달을 리가 없다. 서양에서 얘기하는 ‘균형감각’의 결여는 삶에 대한 올바른 판단으로 이끌지 못한다.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을 깨닫는 사람만이 큰 것, 중요한 것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것, 사소한 것에 대한 발견은 우리의 삶에 감사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한다. 아이의 웃음을 보며 미소 짓는 얼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소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족들의 건강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크게 출세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감사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곁을 지키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인도의 작가 라즈니쉬(Osho Rajneesh)는 “한 줄기 산들바람에게도 기꺼이 감사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심지어 “다행히 일어나지 않은 나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사소한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를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에 대한 기준은 주관적이다. 나에게는 사소한 것도 남에게는 크고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주체에 따라 각기 달라지는 것이 사물과 상황에 대한 느낌이고 판단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일에 대한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 체계 속에서 우리는 남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행위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기차 여행을 하며 조용히 차창을 스치는 풍경에 빠져든 누군가를 향해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함부로 그만의 세계를 침범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 남에 대한 배려는 그래서 사소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승리로부터 몰락까지의 거리는 단 한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사소한 일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함을 보았다.” 나폴레옹의 얘기이다. 우리의 일상은  사소한 것들로 구성된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깨어나는 일상의 소리들,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 아침밥 짓는 소리, 가방을 챙기는 아이들의 투덜대는 소리.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남의 사소한 즐거움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사소한 것들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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