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승,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Washing the spade at the sun-set river
by Chung, Hee-sung
It is not water alone that flows.
As it does, we flow.
Washing the spade at the river,
Pouring away our sorrow there.
Work being over at sunset,
I stare at the river which gets deeper of itself.
I squat down to smoke a cigarette
And just return.
My life, relying on a spade,
Goes down and down like this
And the moon is emerging
Out of the rotten bottom of the river.
As it does, we flow.
Washing the spade with running water
We need to return to the village of people with no food
As it gets dark again.
한파가 갑자기 덮쳐왔습니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다가 나이 든 경비원 한 분이 산더미처럼 쌓인 재활용품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떨어진 기온에 손발 시린 바람까지 불어왔습니다. 어제 내린 눈비가 버려진 쓰레기 위에 얇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많이 춥겠는데...’ 지나치는 길에 “고생하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마스크 쓴 그의 눈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나갑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물건은 만들어져야 하고, 집도 지어져야 하고, 거리는 청소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주변은 여전히 위험합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고, 마실 수 있는 공기도 깨끗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 바깥 상황만 한탄하던 내가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정희성의 시는 참 회화적입니다. ‘저문 강에 삽을 씻다’라는 표현은 시적이면서도 왠지 반란을 꿈꾸는 병사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삽을 씻으며 자신들의 슬픔도 함께 씻어냅니다. 삽과 노동은 그들의 삶의 일부입니다. 허리가 끊어지고 핏줄이 튀어나올 것 같은 삶의 현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척박하고 그들의 마음은 아직도 허망합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 쭈그려 앉아 피우는 담배 한 대에 한숨을 뿜어내곤, 썩은 강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달빛을 바라봅니다. 여전히 가난한 노동자의 삶.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을로 갑니다. 그렇게 같은 마음의 사람들끼리 굶주려도 함께 할 그 자리로 갑니다. 벌써 해가 졌으니 어두운 길을 재촉해야겠습니다. ‘흐르는 것이 어디 물 뿐이랴.’ 그들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죠.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