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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6. 2020

강철로 된 무지개를 꿈꾸며

이육사, 절정 :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만이 간절히 원할 수 있다.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Climax

      by Lee, Yook-sa     


Washed to the North at last

By the whip of the harsh season.    


Standing on the edge of a heavy frost

At the highland where the weary sky stops.    


Where should I kneel down?

No place to put my feet on.     


That’s why I think with my eyes closed

Winter is an iron-clad rainbow.    


식민지 시절에 나온 이육사의 시가 오늘에 다시 인용되었다. ‘겨울은 철로 만든 무지갠가 보다.’ 이 마지막 시구는 어떤 시적 은유를 지니고 있을까? 현실에 대한 어떤 바람을 나타내고 있을까? 애국 시인 이육사는 17 차례의 체포와 투옥을 거쳐 해방을 한 해 남긴 1944년 1월 베이징에 있는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고문에 시달리다 순국한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대구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시절 수인 번호 ‘264’를 필명으로 쓰고 짧은 생애 내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투쟁한 타고난 투사였다. 잦은 투옥으로 건강을 해치게 되자 펜을 잡아 마지막 순간까지 일제에 저항한 이육사. 그의 시는 그렇듯 비장했다. 원하지 않는 망명의 시절 북방의 거친 바람과 서릿발 같은 추위는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조국의 한 조각 땅에도 발붙일 수 없었던 그 외롭고 힘든 고난의 세월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애국적 정열과 동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시인의 삶은 혹독하고 무도한 운명을 단지 견뎌내지 않았다. 그는 그 운명에 항거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모든 것을 바쳐 올바른 것을 위해 저항하며 겪어야 했던 그 비정한 세월의 어둠 속에서, 그는 무지개를 보았다. 찬탄과 그리움만 남기고 사라질 그 아름다운 무지개가 그의 황야에 떠올랐다. 그 황량한 대지 위에서 시인은 간절히 기원한다. 강철처럼 사라지지 않을 무지개가 영원히 고국의 하늘 아래 빛나는 모습을. 아! 그에게는 그것만이 삶의 유일한 바람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다. 하늘에 걸린 영롱한 무지개는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뛰게 하는가. 그리고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난 뒤 마음속에 남은 그 아름답던 색색의 층들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그러나 이육사의 무지개는 계절의 채찍과 서릿발의 칼날에 담금질된 강철로 만들어져 그 추운 겨울에도 여전히, 마지막 희망처럼 그곳에 있다. 여전히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의 강철 무지개는 누구의, 어떤 바람일까? 제 나라를 갖고 사는 우리들에게 무지개는 무엇에 대한 그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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