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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23. 2020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

최영미, 이미...

이미

       최영미    


이미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    


이미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이미 가진 자들은

아프지 않다    


이미 아픈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미 뜨거운 것들은

말이 없다    


Already 

    by Choi, Young-mi    


The shoes already drenched 

Never get wet again.      


Someone already sad 

Never cries.     


Those who already have much

Never feel sick.       


A body already ailing 

Is dead to shame.     


Things already hot 

Never speak.

(Translated by Choi)    


세상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미워할 때도, 잘못을 저지르고 회개하고, 기뻐하고 슬퍼할 때도 다 그럴만한 타이밍이 있기 마련입니다. 운명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그런 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을 가르치는 일만 해왔지만 이제 새로운 때가 되어서인지 또 다른 삶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젊은 시절 방황하고 번민하던 때가 있었듯이 이젠 무감해진 자신을 바라봅니다. 다 제시간에 맞추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영미 시인의 시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젖은 신발은 그대로 두어야죠. 마를 때까지 말입니다. 이미 슬픔에 잠긴 사람은 벌써 많이도 울었을 겁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없어서 겪는 고통을 모를 수밖에요. 아픔에 겨우면 부끄럼 없이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달궈진 열정은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게 되는 것이죠. 시에 대한 제 마음대로의 해석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미 지나간 세월은 다시 오지 않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흐르는 물은 원래의 물이 아니고 발을 담근 그 사람도 예전의 그가 아닐 테니까요. ‘이미’는 과거형이지만 그 시간에는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우리는 다시 살 수 없습니다. 지금의 ‘때’를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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