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신 7대 불가사의 재단’(New Seven Wonders Foundation)은 다음의 일곱 가지를 새롭게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인도의 타지마할
•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
•멕시코의 치첸 이트사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이 모든 것들이 인류의 문명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적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가사의’라는 번역은 자주 들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뜻이 ‘알 수 없는 것’이란 점에서 보면 영어의 ‘wonders’에 대한 번역으로는 어색합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 ‘경이(驚異)’라고 하는 것이 바른 번역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놀라운 유적을 인류가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하는 느낌이라면 굳이 원어의 뜻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불가사의’라는 말이 더 멋지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구절의 번역도 문맥상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복수를 망설이는 햄릿의 이 대사는 오히려 “살릴 것이냐, 죽일 것이냐”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원래의 번역이 오류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도하는 바가 받아들여진다면 그 표현이 더 멋지게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놀라운 것 일곱 가지를 적어보라고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써낸 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1.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
2. 타지마할
3. 그랜드 캐넌
4. 파나마 운하
5.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6. 성 베드로 대성당
7. 중국의 만리장성
마침내 시간이 지나고 답지를 걷던 선생님은 한 여학생이 쪽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물었죠. “답을 쓰기가 어렵니?”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일단 네가 쓴 것을 보여줄래?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자 그 아이가이렇게 대답했죠. “너무 많아서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요.” 머뭇거리며 내민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1. 보는 것
2. 듣는 것
3. 만지는 것
4. 맛보는 것
5. 느끼는 것
6. 웃는 것
7. 사랑하는 것
선생님이 그 답을 다른 학생들에게 읽어주었을 때 교실에는 긴 정적이 이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것들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있을까요?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평가되는 헬렌 켈러의 글 “내가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에서 그녀는 눈을 뜰 수 있다면 이런 것들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첫째 날에는 자신을 평생 가르치고 지켜주었던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 둘째 날에는 먼동이 트고 어둠이 빛으로 바뀌는 새벽의 기적,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가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과연! 우리의 삶은 모두가 놀라움이고 경이고 기적입니다. 매일처럼 경험하는 이 놀라운 기적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아직도 7번 뒤에 많은 것을 써놓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한 번 써 보시지요. 저도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한 가지만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