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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20. 2021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내린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Snow Falling on the Village of Chagall

                         by Kim, Choon-soo    


In March snow falls on the village of Chagall 

At the temple of a man waiting for spring 

Stand out veins

Shivering.   

Softly touching the trembling veins

Newly rising on his temple,

Snow with thousands of swings

Falls down from the sky and covers

The roofs and chimneys. 

When March comes, 

Those tiny winter fruits in the village of Chagall 

Are tinged with olives

And, at night, women

Make the most beautiful fire of the year

In the fireplace.      


그해 여름 나는 홀로 니스의 해변 작은 모텔에 머물고 있었다. 마치 고흐가 살던 집처럼 노란빛을 칠한 그 이층 집 이층 방에서 나는 간밤의 열정을 식히며 망연히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침부터 뜨거워 보이는 햇빛이 길바닥에 부딪혀 모든 것이 은처럼 빛나고 있었다. 불현듯 어딘가를 걷고 싶었고, 나는 줄 달린 작은 가방을 어깨에 걸고 반바지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 보니 끝 모를 긴 언덕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프랑스의 색채와 냄새를 고스란히 내뿜는 주택가의 언덕은 맞은편의 하늘을 마치 작은 창문처럼 감싸고 있었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얼마나 올라가야 하지?’ 하지만 주택가 그 언덕길은 다행히도 좁은 그늘을 만들어 놓았고 나는 허리를 구부린 채 그 길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니스의 샤갈미술관

한참 만에 언덕 끝에 올라섰을 때 푸른 하늘에 맞닿아 긴 그림자를 드리운 한 미술관을 발견하였다. 마티스 미술관. ‘아, 마티스!’ 스스로 대견해하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섰고, 벽에 걸린 그림은 보지도 않고 전시관의 회랑을 앞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잠시 의자에 앉아 멍한 눈길로 바깥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가방을 들쳐 메고 이번에는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큰 길만 나오면 택시라도 잡아타고 다시 2층의 내 방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언덕을 반쯤 내려갔을까? 내 앞에 작은 정원이 딸린 또 하나의 미술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샤갈 미술관. ‘아!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순간 김춘수의 시가 떠올랐다. 그 샤갈이 여기에 있었다. 나는 흥분을 누르며 미술관으로 들어섰다. 작은 정원을 가로질러 미술관의 현관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파리를 사랑한 이 백러시아 출신 화가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제목을 알 수 없는 그의 그림들이 펼쳐지는 그 공간에서 나는 샤갈의 마을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원의 작은 벤치 위에서 한참 동안 낮잠에 빠지고 말았다.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1912

김춘수의 상상 속에서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린다. 포근히 덮인 눈 속의 그 마을은 따뜻했다.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에는 사람과 동물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쟁기를 든 농부와 그의 아낙, 양치는 소년, 작은 교회와 집들. 그 평화로운 마을에 시인의 눈이 내린다. 봄을 기다리는 사내와 불 피우는 여인들. 그리고 올리브색 겨울 과일이 긴 겨울을 지내고 가지에 달려 있는 마을의 3월에 지붕과 굴뚝에 쌓이는 흰 눈. 그렇게 시와 그림은 상상 속에서 결합되고 또 다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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