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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09. 2021

시의 탄생

진샤, '검은 시의 탄생'

검은 시의 탄생

                 진샤    


밤이 건넨 시의 어휘는

수면(睡眠)의 표면을 떠다니다

아침 햇살에 증발해 버린다.     


그래도 괜찮다.    


태양은 숙명처럼 달을 길어 올릴 것이고

달이 떠받친 또 하나의 밤은

끝끝내 시를 완성시키고 말 테니까.     


그러나

오늘 밤이 탄생시킨 시는

밤만큼 검은 무의미로 가득하다.    


그래도 괜찮다.     


시는 무의미로 밤을 부유할 것이고

불면이 잡아 늘린 밤의 길이는

끝끝내 또 다른 시를 잉태할 테니까.     


The Birth of Black Poems

                          by Jinsha     

Those poetic words the night hands over

Are drifting on the surface of slumber

And then, evaporated into the morning light.     


It’s OK.     


For the sun is to draw up the moon

And another night propped up by the moon

Will finally complete a poem.     


But

The poem borne by tonight

Is filled with black meaninglessness-es as dark as night.     


It’s OK.     


For poems are still floating in darkness

And the night prolonged by sleeplessness

Will conceive another poem to the end.     


시는 마음속에 있지만 그것이 손에 쥔 연필로 그려지기에는 많은 고통과 번민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때론 잔물결처럼, 어떤 때는 몰아치는 파도처럼, 뜨거운 불처럼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주어진 낱말들을 고르고 또 고르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스스로 감탄도 하고, 좌절도 합니다. 은근한 자부심과 열패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거죠. 시인의 밤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러다 깜빡 졸기도 하고 창문을 열어 달빛과 별빛을 불러들이기도 하지요. 밤은 시인을 감상에 빠뜨리고, 절망으로 내몰고,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늦은 아침햇살이 시인을 깨우면 시어들과 더불어 보냈던 환락의 찌꺼기가 방안을 둥둥 떠다닙니다. 그리고 간밤에 지었던 암호 같은 시가 모두가 의미 없는 넋두리로 느껴지기도 하지요. 무심한 듯, 다소는 쫒기 듯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밤을 맞이합니다. 그 검은 밤의 휘장을 둘러치고 시인은 다시 잠 못 든 채, 뜻 모를 시어들을 모아갑니다. 그렇게 밤에 물든 검은 시들이 탄생합니다.   


* 위의 시는 브런치에 '진샤'(오도독 시인)라는 필명으로 시를 쓰시는 작가님의 시를 빌려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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