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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31. 2021

두 가지 사랑 이야기

가브리엘 & 크리스티나 로제티 :

갑작스러운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어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인지는 알 수 없지요.

문 넘어 그 풀밭을 알고 있어요.

달콤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

한숨 소리와 바닷가를 비추던 불빛들도.      


전에 당신은 제 사람이었어요.

얼마나 오래 전인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제비가 날아오르던 그 순간

그렇게 당신이 고개를 돌리자

베일벗겨졌지요. - 난 예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전에도 이랬었나요?

이렇듯 소용돌이치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의 삶, 우리의 사랑과 더불어

죽음의 어둠 속에서도 다시 회복되고

낮으로 다시 한번 즐거움을 주지을까요?         


Sudden Light

         by Dante Gabriel Rossetti    


I have been here before,

But when or how I cannot tell:

I know the grass beyond the door,

The sweet keen smell,

The sighing sound, the lights around the shore.    


You have been mine before,—

How long ago I may not know:

But just when at that swallow's soar

Your neck turned so,

Some veil did fall,—I knew it all of yore.    


Has this been thus before?

And shall not thus time's eddying flight

Still with our lives our love restore

In death's despite,

And day and night yield one delight once more?        


노래

     크리스티나 로제티    


사랑하는 이여, 나 죽더라도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그늘 만드는 편백나무도 심지 마세요.

소나기와 이슬에 젖은

내 무덤 위 푸른 풀이되세요.

기억하려면 기억하세요.

잊으려면 잊으세요.  


그림자도 못 보겠지요.

비도 느끼지 못하겠지요.  

고통에 빠진 듯

끝없는 나이팅게일의 지저귐도 듣지 못할 거예요.

뜨지도 지지도 않는

어스름 속에서 꿈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할 거예요.

어쩌면 잊을 거예요.     


Song

      by Christina Rossetti    


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r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로제티 집안의 남매가 쓴 이 두 편의 시는 사랑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빠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잊혔던 사랑의 데자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의 사랑을 회상하면서 다시금 추억을 현실 속에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이태리의 시인 단테를 숭배해 자신의 이름에 ‘단테’를 넣었던 그였습니다. 가브리엘은 13세기 시인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평생에 단지 두 번 본 여인을 사랑한 단테는 그녀를 ‘신곡’ 속에 되살려 천국을 안내하게 했죠.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베아트리체는 시인의 펜 끝에서 살아나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은 지금처럼 생생하죠. 그 모습과 냄새와 소리들 모두가 가슴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 모든 기억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했던 두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 번 그 추억 속의 사랑을 되살리고 싶어 합니다. 죽음으로 갈라진 사랑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되돌려 그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맛보고 싶은 것이죠. 사랑에 관한 한,  속에서의 판타지는 서로 보고, 만지고, 느끼는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회상의 빛이 쏟아져 내 옆에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길 바라는 것이겠죠.     

..............,..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후계자라 불리고 알프레드 테니슨에 이어 계관시인 물망에 올랐던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19세기 영국 여류시인의 계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묘사는 직접적이면서도 감각적입니다. 연약하면서도 역설적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갈구합니다, 그래서 기억해도, 잊혀도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내가 죽어도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말라 합니다. 무덤에 꽃나무도 심지 말라합니다. 그러면서도 무덤을 끌어안은 풀이돼라 합니다. 잊어도 기억해도 좋다는 말은 너무도 가슴 저린 애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시인은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어둠 속에서도 꿈꾸려 합니다. 그리고 잊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랑을 여전히 그리워합니다. 사랑의 노래는 죽음의 암흑 속에서도 울려 퍼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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