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ug 03. 2021

그리움 같은 누나

윤동주, 편지

편지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부치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A Letter

          Yoon, Dong-joo


Sister!

This winter too

Heavy snow fell.     


Into a white envelope

I will put a handful of snows

And send it to you

With nothing written

With no stamp put on it

As clean as it is.     


In the country where you have gone

They say it never snows.     


윤동주의 동시 같은 시입니다. 사내아이들에게 누나는 어머니와 애인이 합해진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형이라는 말에서 아버지와 친구의 모습이 함께 그려지는 것과 같지요. 길을 가다 다리가 아프다고 투정 부리면 나보다 조금 더 큰 누나는 기꺼이 등을 내어주었습니다. 용돈을 아껴 내게 호떡 하나를 사주던 사람도 내 누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사랑 때문에 애태우던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누나. 남자 친구와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나다가 날 보면 짐짓 어색한 듯 얼굴 붉히던 그 누나가 그립습니다. 누나가 없어도 사내아이들은 그런 누나의 모습을 가슴에 간직하고 어합니다. 어머니라는 말처럼 누나라는 말도 왠지 서글픈 감상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요?

시집간 누나가 어색해졌던 날 괜히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은 나이 든 지금까지 가슴에 여전합니다.     


외로운 시인은 누나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무 말 없어도 그리움은 가득합니다. 눈 내린 겨울 어느 날, 눈처럼 희던 누나의 모습을 가슴에 안고, 사연도 없고, 받을 사람도 없이 우표 없는 편지를 보냅니다. 누나처럼 깨끗한 봉투가 눈에 젖어 눈물처럼 번집니다. 누나가 떠난 그곳은 어디일까요? 너무 멀어 닿을 수 없을까요, 아니면 갈 수 없는, 찾을 수 없는 곳일까요? 청년이 된 시인은 아마도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불렀던 그 노래를 다시 부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두둥실 흰 구름 멀리 떠가네

우리 누나 좋아하는 저 구름

두둥실 흰 구름 멀리 떠가네

누나하고 함께 보던 저 구름 


* 위의 동요는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가 정세문 교수가 외국 노래에 가사를 붙인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1FyeZq6XKU



매거진의 이전글 기도의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