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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31. 2021

가을에 내리는 봄비

변영로 : 봄비

봄비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는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Spring Rain 

         Byun, Young-ro    


As there is a calling, low and deep,

I go out, ah, I go out...

Only the milk-white clouds fully carrying drowsiness

Walk on the blue sky

So laboriously but so lazily,  

Ah, my heart made so sad without losing anything.     


As there is a calling, low and deep,

I go out, ah, I go out...

Only the unseen, trembling breath of a flower, 

Like the past reminiscence vaguely looming,

Shrinks in its own sweet boasting! 

Ah, my heart made so painful without being stabbed.     


There is a calling low and deep,

I go out, ah, I go out...

Now the milk-white clouds and the breath of a flower are all gone

Only the spring rain like silver-threads, reddening the ankle of a dove,

Falls like worries without a song!

Ah, my heart waiting for someone never to come!  


가을의 길목에 서서 봄을 떠올린다.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 환청을 듣는 것일까?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있어 저도 모르게 문 밖을 나선다. 하지만 사위는 고요하고 하늘에는 흰 구름만 떠간다. 서두른 내 마음을 알아본 것일까. 한참을 힘겹게, 너무도 느리게 흐르는 구름에 낯이 뜨겁다. 괜 시리 마음 한 구석이 서럽다.     


한동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게으른 몸을 일으킨다. 아, 무수히 지나가는 기억들, 그 떨림 속에 한 송이 봄꽃이 가냘픈 숨을 내쉰다. 희미한 회상 속에 꽃이 흩뜨리는 향기가 끼어든다. 가을의 서늘함 속에 봄꽃이 그 내음과 색깔과 하늘거림을 뽐낸다. 갑자기 가슴이 쓰려온다. 가시 없는 꽃에 찔린 것일까? 그런 적은 없어도 마음은 또다시 아프다.     


이젠 아예 그 소리가 나를 부른다. 낮고 은밀한 그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다시 나가본 하늘엔 좀 전의 구름도, 꽃의 자랑질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가을 하늘에서 봄비가 내린다. 계절이 무슨 상관인가! 젖은 땅 위에서 먹이를 구하는 비둘기의 벗겨진 발목이 애처롭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에 마음이 무겁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나 보다. 날 부르던 그 소리가 말한다. 오늘도 그는 역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상심한 마음만 그 자리에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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