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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05. 2021

"내가그녀예요."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 : '거울의 뒷면'

The Other Side of a Mirror

           Mary Elizabeth Coleridge     


I sat before my glass one day,

And conjured up a vision bare,

Unlike the aspects glad and gay,

That erst were found reflected there –

The vision of a woman, wild

 With more than womanly despair.    


Her hair stood back on either side

A face bereft of loveliness.

It had no envy now to hide

 What once no man on earth could guess.

It formed the thorny aureole

 Of hard unsanctified distress.


Her lips were open – not a sound

Came through the parted lines of red.

Whate'er it was, the hideous wound

In silence and in secret bled.

No sigh relieved her speechless woe,

She had no voice to speak her dread.    


And in her lurid eyes there shone

The dying flame of life's desire,

Made mad because its hope was gone,

And kindled at the leaping fire

Of jealousy, and fierce revenge

And strength that could not change nor tire.     


Shade of a shadow in the glass,

O set the crystal surface free!

Pass – as the fairer visions pass –

Nor ever more return, to be

The ghost of a distracted hour,

That heard me whisper, "I am she!"    


거울의 뒷면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    


어느 날 나는 거울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 삭막한 환영을 불러냈죠.

이전에 그곳에 비쳤던

발랄하고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지요.

더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여인의 환영이었어요.     


한쪽으로 머리는 벗어지고

얼굴에서는 사랑스러움이 사라졌어요.

세상 어떤 남자도 상상하지 못했던

감춰야 할 선망의 아름다움은 없었지요.

힘들고 성스럽지 못한 고통을 담은

가시 돋친 후광만을 가졌어요.      


입술은 벌어지고, 어떤 소리도

그 갈라진 붉은 주름 사이로 나오지 못했어요.

그것이 무엇이든 끔찍한 상처가

침묵과 은밀함 속에서 피를 흘렸죠.

한숨으로도 가시지 않는 말 못 할 비통함

그녀는 두려움을 말할 목소리마저 잃었어요.      


거울 속 그녀의 핏빛 눈에서

삶에 대한 욕망의 꺼져가는 불꽃이 빛나고

질투와 사나운 복수,

변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힘의

튀어 오르는 불꽃에 타올라

사라져 버린 희망에 미쳐버렸죠.     


거울 속 그림자의 그늘,

오, 수정 같은 표면을 자유롭게 하라!

지나가라 – 더 밝은 환영이 지나가듯-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지나간 시간의 유령이 되어

나의 속사임을 들었죠, “내가 그녀예요. “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Mary Elizabeth Coleridge, 1886~1907)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여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던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증손녀이기도 하지요. 엘리자베스는 시 속에서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장식품처럼 살아야 했던 여성의 아픔을 비장한 표현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를 쓸 때의 필명이었던 ‘아노도스’(Anodos)는 ‘없는 길 위에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죠. 하지만 그녀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신만의 시의 길을 걸어갔던 시인이었습니다.       


과거... 여인의 삶은 고통스러운 여정이었죠.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가 걸어오셨던 길. 남성이 지배했던 세상에서 여성은 자신에게 부여된 ‘여성스러움’의 숙명을 지니고 살아야 했습니다. 한 때 ‘여성은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라고 말한 것은 여성의 인격에 대한 남성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여성학자 보브아르(Simone de Beauvoir)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관습과 제도가 여성들에게 부여해왔던 개인적, 사회적 강압을 비난했었죠. 물론 남성들에게 가해졌던 금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들은 지난 세기 초반만 해도 노예와 다름없는 대우를 감수해야 했던 것입니다.     


시 속의 여인은 거울에 비친 늙고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랑스러움도 아름다움도 상실한 여인, 누르고 버텨온 그 고통과 회한의 세월을 한탄조차 할 수 없는 여인의 운명, 그러나 삶의 욕망은 잦아들어도 여인의 한은 가시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눈에는 절망과 한탄이 가득합니다. 거울 속의 그림자 같은 모습은 이제 결코 바뀔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 환영을 보내버리고 지나온 세월 속에 묻혀버리려 합니다. 그리고 그 뿌연 환영이 이제는 잊힌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백 수십 년 전의 여류시인이 쓴 시이지만 저는 지난 세대를 함께 살아왔던 할머니, 어머니, 아내들 그리고 견딜 수 없이 아팠던 무수한 여인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세월이 변화시킨 모습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사무친 그 많은 욕망과 좌절과 비탄과 한을 어찌해야 할까요. ‘제가 그녀예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라도 깃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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