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 갈대 섰는 풍경
갈대 섰는 풍경(風景)
김춘수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 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도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The Landscape of Standing Reeds
Kim, Choon-soo
In the middle of the night,
Shouldering the blue moonlight,
Why is that field
Crying so loud?
In that field
Why is the wind,
Roaming around during the day,
Crying so sadly?
Why the field is,
Quieter than the seas,
Crying like a beast in sorrows,
Nobody knows.
바람 부는 밤, 갈대숲 앞에 서본 적이 있나요? 달빛 고즈넉한 그 갈대숲을 품었던 벌판에 서서 귀 기울여본 적은 있는지요? 그 벌판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시인에게는 서러운 울음소리로 들렸던 모양입니다. 인생이 그렇지요. 허황한 벌판에 서서 그렇듯 슬픈 통곡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푸른 달빛도, 스쳐 지나는 바람도, 굶주린 짐승까지도 모두 울고 있는 거친 들판과 흔들리는 갈대의 풍경만이 스산하게 남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