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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01. 2022

그대 돌아보지 마시오

정호승 : 등신불 

등신불

        정호승 


강물도 없이 강이 흐르네

하늘도 없이 눈이 내리네

사랑도 없이 나는 살았네


모래를 삶아 밥을 해 먹고

모래를 짜서 물을 마셨네


잘 가게

뒤돌아보지 말게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네


눈이 오는 날

가끔 들르게


바람도 무덤이 없고

꽃들도 무덤이 없네


A Lifelike Buddhist Statue 

                        Chung, Ho-seung 


River flows without water. 

Snow falls without the sky. 

I have lived without love. 


I ate by boiling sand.

I drink by squeezing sand. 


Good bye. 

Don’t look back. 

Any face turing around is sad. 


The day snow falls 

Come by as a guest. 


There is no grave for the wind,

No grave for the flowers. 


잘 가시오, 사랑하는 그대여. 물 없이 흐르는 강처럼, 하늘 없이 내리는 눈처럼, 그렇게 내 곁에서 떠나가시오. 하늘이 없이도 여전히 별은 뜨고, 땅이 꺼져도 샘은 솟으니 사랑 없이도 난 살아 있지요. 마른입에 모래를 씹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서러운 물을 마셔도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소. 잘 가시오, 그리운 사람. 돌아보지 마시오. 그대 붙잡고 눈물 흘릴까 걱정되니까.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손님처럼 잠시 들리시오. 못 먹는 술이라도 한 잔 합시다. 남은 미련처럼 마십시다. 바람도 꽃도 무덤 없이 사라지듯 우리네 인생사도 그런 것 아니겠소. 제 몸 태워 금박을 입힌 등신불인들 떠난 인연에 어찌 허리 굽히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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