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 등신불
등신불
정호승
강물도 없이 강이 흐르네
하늘도 없이 눈이 내리네
사랑도 없이 나는 살았네
모래를 삶아 밥을 해 먹고
모래를 짜서 물을 마셨네
잘 가게
뒤돌아보지 말게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네
눈이 오는 날
가끔 들르게
바람도 무덤이 없고
꽃들도 무덤이 없네
A Lifelike Buddhist Statue
Chung, Ho-seung
River flows without water.
Snow falls without the sky.
I have lived without love.
I ate by boiling sand.
I drink by squeezing sand.
Good bye.
Don’t look back.
Any face turing around is sad.
The day snow falls
Come by as a guest.
There is no grave for the wind,
No grave for the flowers.
잘 가시오, 사랑하는 그대여. 물 없이 흐르는 강처럼, 하늘 없이 내리는 눈처럼, 그렇게 내 곁에서 떠나가시오. 하늘이 없이도 여전히 별은 뜨고, 땅이 꺼져도 샘은 솟으니 사랑 없이도 난 살아 있지요. 마른입에 모래를 씹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서러운 물을 마셔도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소. 잘 가시오, 그리운 사람. 돌아보지 마시오. 그대 붙잡고 눈물 흘릴까 걱정되니까.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손님처럼 잠시 들리시오. 못 먹는 술이라도 한 잔 합시다. 남은 미련처럼 마십시다. 바람도 꽃도 무덤 없이 사라지듯 우리네 인생사도 그런 것 아니겠소. 제 몸 태워 금박을 입힌 등신불인들 떠난 인연에 어찌 허리 굽히지 않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