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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18. 2024

신의 고백(2화)

오전 10시가 좀 지나서, 도형은 용기를 내어 고시원으로 갔다.      


“행복 고시원?”     

그는 소리 내어 읽었다.

오래된 나무 간판이다. 

간판만 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그는 처음 저 간판이 올라갈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처음 저 간판을 단 사람은 이곳에서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간판을 달았겠지?’

도형은 이런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지워진 <행복>이라는 글씨는 불행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습을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옥상 남자를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아, 도형은 다시 병원으로 다시 돌아갈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를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자신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도형은 다시 고시원으로 몸을 돌렸다.     

“얼굴만 봐도 뭔가 느낌이 오지 않을까?”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 사람의 얼굴은 보통 사람과는 다를 것이라고 도형은 생각했다.

도형은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아래위 같은 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20대 청년이 보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고 도형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 혹시 비어있는 방이 있나요?”


도형은 방을 구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자신이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그냥 뇌가 내린 명령일 뿐이었다.     

“그럼이요, 비어있는 방이 더 많죠.”


이렇게 낡은 고시원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 청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도형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에 이유 없이 안심했다.


“그냥 월세가 얼만지 가격도 알아보고, 방도 좀 구경해 보려고요. 당장 결정할 건 아니고요.”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그럼 올라가서 한번 둘러보고 오세요. 삼 층에 있는 방 한, 두 개는 아마 열려 있을 거예요. 잠금장치가 고장 났거든요. 방의 모양은 거의 비슷하니 모두 다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도형은 청년에게 눈인사하고 삼 층으로 올라갔다. 이름만 고시원이지 그냥 노숙자 쉼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하가 아닌데도 지하실에서나 날 것 같은 곰팡내가 느껴졌다.


좁고 긴 복도에는 너무 오래되어 작동하지 않을 듯 보이는 소화기 몇 개가 널브러져 있고, 낡은 자전거 몇 대가 체인으로 서로 묶여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순간 허름한 복장을 한 백발의 노인이 낡은 쇼핑백 하나를 소중한 물건인 것처럼 가슴에 안고 방에서 나왔다.

도형은 노인에게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날 것 같아 숨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 노인이 나가고 난 후 복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청년이 알려준 복도 끝 방의 문을 열었다. 방안에서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방안의 모습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름 정리가 잘된 작은 일인용 침대에 골프채와 골프공 모양의 낡은 스탠드 옷걸이 하나, 아주 작은 옛날 TV 한 대. 

건물 전체에 퍼져있는 곰팡만 빼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 본 남자가 이곳 어딘가에 누워있을 텐데’

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방마다 다니며 조심스럽게 귀를 문에 가까이 붙이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집중하며 들어보았다.

몇 개의 방을 지나쳐 오는 동안 도형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306호라고 검은 매직펜으로 대충 써놓은 것 같은 문 앞을 지날 때 도형은 알 수 없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도형은 TV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여긴가?’


TV 소리와 함께 문틈 사이로 강한 석유 냄새가 스며 나오는 것을 도형은 느낄 수 있었다.

도형은 문 앞에 서서 망설였다. 스스로 주먹을 불끈 쥐며 긴 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 줄 친구를 언제나 원했다. 하지만 그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 그를 항상 외톨이로 만들뿐이었다.

가끔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난 친해질 때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멀어지곤 했다.

도형은 그런 자기 자신을 상기하며, 또다시 자신에 대한 권태감을 느꼈다.

도형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방을 두드릴 사람이 없다는 듯이 반응이 없었다.


도형은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역시 반응이 없다.     

오히려 반응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좀 더 세게 다시 문을 두드렸다.

마찬가지로 반응이 없다.

도형은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문틈 사이로 스며 나오고 있는 강한 석유 냄새의 원인이 궁금했다.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번 문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 소리인가?’

그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TV에서 나는 소리인지 실제 사람의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또다시 문을 두드렸다.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도형은 더 강해진 석유 냄새 때문에 잠시 눈을 감고 얼굴을 찡그렸다.     

눈을 뜬 도형은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숨을 멈추었다.     

한 남자가 나체인 상태로 좁은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한쪽 팔은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닿아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게다가 속옷 하나도 걸치지 않은 그의 몸은 마치 흰 페인트를 쏟아부은 것처럼 온몸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자신이 맡은 석유 냄새가 바로 페인트 냄새였다는 것을 도형은 알 수 있었다.

도형의 심장은 흥분한 말처럼 뛰고 있었다.     

문을 닫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발이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도형은 아주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강한 냄새로 인해 도형은 작은 현기증을 느꼈다.

흰색의 남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살아있을까?’


도형은 마치 죽은 짐승의 몸을 만지듯이 조심스럽게 남자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그 순간 남자의 눈꺼풀이 움직이더니 갑자기 눈을 떴다.

도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형은 갑자기 현실감이 사라졌다.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남자의 눈동자는 약에 취한 사람처럼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도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으세요? 지금 제 이야기가 들리세요?”

도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119를 불러야 할까?’

도형은 뒷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전화기 맨 아래 왼쪽 아이콘을 눌렀다.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나타났다.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도형은 알고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숫자 1 두 번과 9를 눌렀다.

그 순간 누워있던 남자가 유령처럼 작은 소리를 냈다.     


“저 괜찮아요.”     

도형은 그 소리에 놀라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저 괜찮아요. 그냥 가주세요.”

술에 취한 사람처럼 혀가 꼬인 채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정말 괜찮으세요?”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역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심호흡하고 침대 옆에 떨어져 있는 얇은 이불로 도형은 남자의 몸을 덮어 주었다.

“어디 아프세요? 어디가 아픈지 얘기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남자는 반응이 없었다.

순간 도형은 아내가 생각났다.

이 남자의 몸이 죽어가는 아내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용기를 내서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정신 좀 차려보세요. 왜 이렇게 누워있는 거예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남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도형은 남자의 머리 위에 있는 작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방문도 반쯤 열었다. 도형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페인트 냄새 때문에 도형은 또다시 작은 메스꺼움을 느꼈다.

‘죽으려고 약을 먹은 걸까? 아니면 페인트 냄새에 취해서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고 이 상태로 그냥 내버려두어도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도형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도형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대 옆 좁은 공간에 웅크리고 앉았다.

햇살이 들어와 페인트가 잔뜩 묻어있는 남자의 흰색 얼굴을 비추었다.

도형은 남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그가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마치 아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빠르게 뛰던 도형의 심장도 제 속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현실 속이 아니라 꿈속이나, 아니면 영화 속, 아니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쯤 지난 후에 누워있던 의문의 남자는 뭔가에 놀란 듯이 급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도형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뜨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정신이 좀 들어요?”     


머리카락마저 흰 페인트로 범벅이 된 남자의 모습은 유령의 모습과 같았다.     


“누구시죠?”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남자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혹시 어젯밤 기억하세요? 옥상 난간에 올라가셨던 분 아니세요?”     

“아”

남자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정말 놀랐어요. 왜 이런 모습으로 계시죠?”

도형은 자신의 질문이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남자는 도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하였다.

도형은 비틀거리는 그 남자가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지만, 비틀거리기만 할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남자는 멍한 얼굴로 벽에 걸린 작은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그 미소가 슬퍼 보였다.     


“죄송한데 저 좀 씻어야겠어요.”     


“네. 그러세요. 저도 이제 가야겠어요. 저도 여기 너무 오래 있었네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몸이 안 좋아 보이셔서.”

흰색 남자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랑 나중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남자는 도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를? 

좋아요. 아무 때나 다시 오세요.”


남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목소리에도 표정이 있다면 아마 무표정이었을 것이다.     

“아, 그래요? 그럼,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남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형은 좁은 공간에서 힘들게 일어나 방을 나왔다.

아내의 병실로 돌아온 후에도 도형은 계속 그 남자 생각을 했다. 

도형은 빨리 남자의 사연을 들어보고 싶었다.     



Epilogue     

난 나의 손을 보았다.

이것은 나의 손이 아니다.

더 길고 가늘어야 한다.     

나는 거울을 통해 나의 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이것 역시 나의 몸이 아니다.


나의 몸은 더 아름답고 밝게 빛나야 한다.     

이건 내 몸의 색이 아니다.

나는 옷을 모두 벗고, 흰색 페인트를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의 풍경이 떠올랐다.     


하늘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곡예 비행하듯 멋지게 날고 있다.

나는 손바닥으로 나의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곳이 하나도 없도록 꼼꼼하게.

내 몸은 온통 흰색으로 변해버렸다.     

나의 정신은 내 고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정신이 조금씩 희미해진다.


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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